에너지 정책이 또 다시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원전을 보자. 원전은 정부 수립 이후, 에너지로 이용하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었고 78년처음으로 고리 1호기가 건설됨으로 우리나라 주요 에너지 원으로 등장한다.
박정희 정권은 에너지를 100% 수입하다시피하는 에너지 산업. 특히 전력 공급원으로 원전을 가장 경제적인 전력으로 보고 전력 투구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경수로 원전에 이어 월성에는 중수로 원전이 건설되었다. 이후, 우리는 원전 기술 자립을 위해 한국형 노형을 개발하고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원전을 건설하는 국가로 올라선다.ㅕㄱ
그리하여 원전은 주력 전력 공급원으로 다시말해 전체 전력 생산의 40% 내외를 차지하는 기저전력으로 자리잡았다. 원전이 기저전력원으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올라서기 까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값진 성과다.
우리나라 원전은 시작부터 시련이었다. 고리원전 1호기부터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원전 반대 시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는 토지보상 과정에서 법정 가격보다 플러스 알파를 지급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제개발이 한창인 시기라 전국 곳곳에서 토지 수용이 이루어졌으나 법정 보상금 이외에 더 보상해주는 사례는 원전 건설이 유일할 정도였다.
필자가 90년대 울진삼척을 방문했을 때. 시가지는 온통 원전 반대 플래카드로 덮혀 있었다. 그처럼 많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국가의 여러 사업이 있었으나 원전은 시민단체들의 먹잇감으로 이미 전락된지 오래였다. 반대시위가 크면 클수록 반대급부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모 인사는 강원도 문막에 전국 원전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인사가 있드는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만나보지는 못했다.
원전 반대 세력의 기치는 하늘을 찔렀다, 그 당시 한번은 미디어에서 환경운동연합을 이끄는 인사가 산자부 자원국장과 대담하는 프로가 있었는데 최 모 대표는 산자부 인사를 쥐잡듯하였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엄청난 시민단체들의 저항에도 원전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전 내 원전 인맥이 견고하게 버티었고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 것이다.
원전 산업을 주도하는 한전 내 주도세력은 에스 대 원전학과 출신들이었다. 원전학과 20명 정원에서 졸업하면 거의 절반이 한전에 입사하여 한전의 원전 인력은 대단히 견고하였다. 이를 두고 후일 원전 마피아라는 소리를 듣게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국가 전력으로 공급하기 위해' 묻지마' 투자를 하여 이루어낸 성과였다.
만약 우리가 전력공급을 위해 원전을 채택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원전을 채택하지 않았을 경우, 대안은 석탄발전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석탄발전을 기저전력으로 삼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럽의 예를 보자.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석탄발전을 대대적으로 공급하였다. 그 결과 유럽의 대기는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고 어린이들이 하늘을 검정색으로 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은 석탄발전으로 인한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석탄발전으로 인한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발전한 산업이 재생에너지다.
불과 수년전만 하더라도 중국의 황해 석탄발전으로 우리의 대기는 엉망이었다. 타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석탄발전을 기저전력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은 탁월한 에너지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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