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비앙카 보스커 지음
오윤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현대 미술은 몇 가지 이유에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일단 거래되는 금액이 엄청나다. 그런데 돈을 내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게 정확하게 뭔지 잘 모른다. 잘 아는 것 같은 사람들, 물건의 가치를 판단해 주는 평론가들이 하는 설명은 전혀 알아듣기 어렵다. 즉 이 판은 사기꾼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반세기 전, 언론인이자 작가 톰 울프는 이 분야의 고전 『현대 미술의 상실』에서 뉴욕 미술계를 조롱했다. 이 코믹한 책의 대가로 울프는 ‘철부지’ ‘무식한 파시스트’라고 맹비난을 받았다. 적어도 그는 자기 영역을 수호하려는 미술계의 단결력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멍청이가 된 느낌 때문에 예술을 보는 일이 그저 괴로웠다’고 고백하는 비앙카 보스커(1986~) 역시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허핑턴 포스트'에서 테크 담당 기자로 일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그의 최신작. 지난해 나온 영문판 원제는 ‘Get the Picture’. ‘그림을 손에 넣다'와 ‘상황을 이해하다'라는 이중의 뜻이 있다.

이 책은 뉴욕 현대 미술계의 실상을 알고자 갤러리에 직접 취업할 생각을 한 기자의 유머러스한 모험담이다. 표지에 ‘잠입 취재기’라고 써 있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면접 때 기자라는 것을 숨겼던 적은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현직 언론인을 채용하려는 갤러리는 없다. 당연한 것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1인 갤러리에서 연락이 온다. 잭이라는 사람이었다.
잭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작은 갤러리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를 배운다. 설치 미술보다는 사진, 사진보다는 회화가 잘 팔린다. 대형 그림은 인기가 없다. 맨해튼의 작은 엘리베이터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천박하게 ‘판매됐다’고 하면 안 되고 ‘소장이 결정됐다’고 말해야 한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한다(인간 백과사전이어야 한다는 뜻). 작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오프닝마다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신규 갤러리가 획득해야 할 최상의 명성은 ‘순수하다’인데 나중에 이것이 화폐로 교환되기 때문이다...등등.
저자는 결국 잭과 결별한다. 사장으로 모시기에 성격이 너무나 이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잭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조금 픽션이 가미된, 백인 미술 엘리트의 전형적인 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갤러리에 취업한 뒤에도 저자는 다른 미술계, 학계 인사들을 만나 취재를 계속한다. 기자니까 만나 주는 것인데, 그런 활동이 독자에게 묘한 실망감을 준다. 내부를 보려고 취업까지 했다는 이 책의 서사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내부 사정은 취업 뒤에도 닫혀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체험형 취재의 구조적 한계가 아닐까?
마지막에 저자는 구겐하임 미술관 경비원이 된다. 여기서 근무한 부분이 좀 더 길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저자는 미술계의 소음에서 떨어져 국외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관조할 기회를 갖는다. 그는 미술 감상의 핵심을 깨닫는다. “한 작품을 5분 이상 볼 것. 그리고 설명은 전혀 읽지 말 것.” 잭 앞에서 그는 늘 ‘맥락’을 몰라 기가 죽곤 했다. 마침내 거기서 벗어날 길을 찾은 것이다.
현대 미술계라는 비밀의 영역을 알아보려던 여행은 저자 나름의 예술관을 확보하면서 끝난다. 뉴욕 미술판은 딱히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게 되었고 그 점이 이 책을 덜 신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저자의 결론은 겁먹지 말고 그냥 빈손으로 다가가라는 것. 작품과 만날 준비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고. 이 말은 “보이는 디테일에 집중하라”라고 바꿔도 된다. 결국 미술이란 간결한 메시지에 저항하는 활동이며 대충이 아니라 자세히 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