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천구 H(81)씨는 저혈압과 난청 증세가 약간 있다. 지난 10년 동안 건강검진을 받을 때 심장 검사를 한다고 10분 뛰었지만, 심장에 이상이 없었다. 척추·관절이 건강한 편이고 자세가 꼿꼿하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 손녀 학원 등하원을 책임진다.
정부가 노인의 생활 기능 상태를 평가했더니 H씨 같은 남성이 여성보다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은 국민건강영양조사(국건영)의 일환으로 노인 생활 기능 척도(LF-10)를 측정해 지난달 30일 공개했다. 정부가 노인 기능을 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질병청은 이번에 65세 이상 남성 812명, 여성 1139명을 조사했다. 다리·상체 동작, 일상생활, 사회활동 참여 등 10개 항목(만점 100점)의 문항을 개발했다.
다리 동작은 ∙의자에서 일어나기 ∙몸을 구부리거나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 꿇기 ∙400m 걷기 ∙쉬지 않고 건물 한층 올라가기 등이다. 상체 동작은 ∙5㎏ 물건 들기 ∙작은 물건 집고 쓰기이고 일상생활 항목은 ∙목욕·샤워하기, 대중교통 이용이다.

전체 평균 점수는 85.9점이다. 65~69세가 92.6점이며 나이 들수록 줄어 70~74세는 89.7점, 75~79세는 83.8점, 80세 이상은 70.6점이다. 남성의 평균 점수는 92.1점, 여성은 80.9점으로 11.2점 차이 났다. 80세 이상 남성은 82.9점, 여성은 64.3점으로 남성이 18.6점 높다.
질병청은 골다공증·근육감소증 실태를 같이 조사했다. 골다공증은 남성이 3.8% 앓는 반면 여성은 31.6%로 월등히 높다. 80세 이상은 각각 4.3%, 45.9%이다. 남성은 나이 들어도 골다공증이 별로 안 생기지만 여성은 쑥쑥 증가한다는 뜻이다. 근육 감소증은 남성이 9.5%, 여성이 9.3%로 비슷하다.
오경원 질병청 건강영양조사분석과장은 "골다공증이나 근육 감소증이 있으면 기능 점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하체 동작의 '몸을 구부리거나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 꿇기' 항목에서 여성의 기능이 낮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성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왜 오래 살까(남성 기대수명 80.6세, 여성 86.4세). 정희원 서울시 서울건강총괄관(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은 "여러 기전으로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정 총괄관은 "여성은 50대에 폐경이 시작돼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면서 노화가 일찍 찾아온다. 근육량과 골밀도가 빠르게 떨어진다"며 "기능 점수가 떨어진 상태로 오래 산다"고 말했다. 정 총괄관은 "남성은 덩치가 크고 근육량이 많다. 이런 게 신체 기능 악화를 막는 보호 효과를 낸다"고 덧붙였다.

기대수명은 생활 기능 점수보다 다른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 기대수명의 위험인자, 즉 흡연·음주에 남성이 훨씬 많이 노출된다. 오경원 과장은 "기능 점수는 기대수명보다는 건강한 노화 또는 건강수명과 더 연관성이 클 듯하다"고 말한다.
최정연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는 "지금의 고령 여성은 세탁기가 없던 시대에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꿇는 일을 한 게 기능 점수 저하로 나타난 듯하다"고 "남성은 젊은 시절부터 신체 활동량이 많아 골밀도가 높아 골다공증이 적고 폐경 같은 걸 겪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총괄관은 "여성은 폐경이 올 무렵 걷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추가로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소식(적게 먹기)이나 채식을 하는 게 도움이 되지만, 갱년기에는 거꾸로 소식·채식보다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