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필름 붙이고 주식·코인 시세 봐야죠”…회사일은 부업, 재테크는 본업

2025-02-11

주식·부동산정보 탐색하고

부업 위한 유튜브 시청까지

정작 회사업무는 뒤로 밀려

노동 유연화·성과중심 평가 등

생산성 높일 보완책 마련해야

“점심을 먹고 30분 정도는 온라인 임장 스터디 오픈채팅방에 들어가요. 모니터에 보안 필름이 붙어 있어 들킬 위험도 없죠. 설령 화면이 보여도 각종 도표와 지도가 올라오는 채팅방이라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걱정 없어요.”

공공기관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오후 업무시간을 ‘부동산 임장’ 준비로 보낸다. 자녀 계획이 있는 그는 직장 업무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이사할 집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짜노동’에 관대한 한국 직장 문화 속에서 업무시간을 개인적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이젠 ‘비밀’도 아니다. 주식, 코인,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 열풍은 ‘퇴근 후’가 아니라 ‘근무 중’에도 이어진다. 외국어 공부나 운동 등 자기계발 역시 ‘월급 루팡’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성과 중심의 평가 문화와 유연한 노동시장이 정착되면 이런 가짜노동이 줄고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광화문 소재 건설회사에 다니는 B과장(39)는 “휴대폰을 여중생들보다 더 많이 본다”고 털어놨다. 늦게 시작한 주식 투자에 빠져 업무 중에도 10분에 한 번씩 주식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는 “업무 특성상 뉴스를 자유롭게 볼 수 있어 자연스럽게 주식 관련 정보를 접하게 된다”며 “아침 출근길에 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증시 레터가 흥미로우면 하루 종일 주가 창만 들락날락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업무시간을 자기계발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기획팀 C대리(36)는 최근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사실상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일은 없지만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 월급도 정상적으로 지급된다. 그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러닝 동호회 참가 신청이나 바리스타 자격증 관련 유튜브 시청이 직장에서 하는 주요 업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젝트 진행 당시 업무 강도가 높았던 만큼 지금은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월급 루팡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불필요한 절차와 느린 의사결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놀게 되는 시간도 많다는 것이다. B씨는 “이메일 한 통이면 끝날 일이 팀 전체 회의로 진행되고 결재도 2~3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일을 찾아 나서지 않는 한 결론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회의는 잦지만 의미 있는 발언을 하는 사람은 팀원 6명 중 2~3명뿐”이라며 “성과 평가가 팀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조별 과제처럼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많고 결국 가짜노동이 자리 잡게 된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과 성과 중심이 아닌 평가 체계가 유지되는 한 ‘일하는 척’하는 문화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노동 투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를 보완할 수밖에 없다”며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 중심 평가가 정착되고 노동시장이 유연화된다면 가짜노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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