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써놓고 매년 고쳐 쓴다, 19살 ‘삼풍 알바생’의 그날 [참사의 기억①]

2024-10-21

시대탐구 1990년대

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을 기억하시나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 아크로비스타가 있는 자리입니다. 1995년 이 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참사. 압축 성장 이면에 위험이 똬리를 틀던 후진국형 인재(人災)였습니다.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는커녕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등이 이어졌습니다. 19살 때 삼풍백화점에서 알바를 하다 등 뒤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겪고 간신히 살아난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29년간 자신을 옭아매 온 상처를 꺼낸 그는 말합니다. 기억되지 않는 재해는 반복된다고, 다음 피해자가 당신일 수 있다고.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그날 백화점은 이상했다.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데 온종일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한 달쯤 일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오전엔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동갑내기라 친했는데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는지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난 백화점 지하 1층 알바생이었다. 친구 소개로 시작한 일당 3만 원짜리 단기 일자리. 목욕탕처럼 백화점에서 장을 본 손님이 짐을 맡기면 번호표를 건넸다가 쇼핑을 마친 고객이 번호표를 보여주면 짐을 내주는 게 내 일이었다. 사실 당시 재수생이었는데 ‘6월 한 달만 일해 돈을 번 뒤 경포대에 놀러 갔다가 7월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실내가 찜통이어서인지 다른 날보다 손님이 적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지하 1층엔 오가는 이가 드물었다. 덕분에 가전제품 판매대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오후 6시 무렵, 식품 판매대 쪽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선민씨랑 ○○씨 이리 좀 와 봐.” 한가해 보이니 다른 일을 시키려 하나 싶었다.

“네 갈게요~”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편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전등이 죄 꺼지고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사방에서 조각들이 쏟아지며 온몸을 할퀴었다. 날카로운 것들을 막아내기엔 반소매 유니폼과 치마는 역부족이었다.

바람이 멎자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제야 건물이 무너졌다는 걸 알았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간신히 친구를 찾았는데 동시에 경악했다. 친구는 찢어진 이마부터 턱까지 피투성이었고, 난 뒤통수에서 발꿈치까지 건물 파편에 찢겨 성한 곳이 없었다. 유니폼으로 지혈하려 했지만, 합성섬유여서 찢기지 않았다.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몰리는 쪽으로 무거운 몸을 옮겼다. 밖으로 향하는 좁은 통로에 인파가 몰려 아수라장이었다. 악다구니 틈에서 가까스로 지상으로 올라서자 뿌연 먼지 사이로 부상자를 실은 작은 버스가 보였다.

버스 안도 비명 천지였다. 중년 남성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지혈도 못 한 채였다. 나도 모르게 허벅지를 감쌌던 손수건을 건넸다. 한 여성은 내가 입은 백화점 유니폼을 보더니 “세 살짜리 아이를 잃어버렸다”며 통곡했다. “나도 이렇게 나왔지 않냐. 괜찮을 거다”고 했지만,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 것 같았다.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도착한 강남성모병원도 매한가지였다. 응급실 앞 복도 끝까지 피투성이 환자로 꽉 차 있었다. 목덜미부터 다리까지 피가 계속 흘렀는데 더 심한 환자가 많아 과다 출혈로 죽은 뒤에야 내 진료 차례가 올 것 같았다.

무작정 친구를 끌고 외래병동으로 가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잡고 애원했다. “저희 좀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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