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9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까지 각종 대소사를 챙기다 보면 한 달이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죠. 하지만 기념일을 챙기는 것보다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게 훨씬 중요하겠죠. 여기 각자 가정을 꾸린 네 자녀와 23년째 함께 살고 있는 65년 차 부부가 있습니다. 이근후(90) 이화여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와 이동원(88)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부부인데요. 다섯 가구 열세 가족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잘 사는 비결은 뭘까요?
가족도 나이가 들어요. 갓 결혼한 신혼부부와 함께 산 지 수십 년이 지난 대가족은 다르죠. 그에 맞춰 각 구성원의 역할도 바뀌어야 해요.
사회학자로서 오랫동안 가족 문제를 연구해온 이동원 교수의 말이다. 1961년 결혼해 올해로 65년째 함께하고 있는 부부는 벌써 환갑을 넘긴 가족이다. 그사이 4남매는 50~60대에 접어들었고, 손자·손녀도 20~30대로 장성했다.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성년을 지나 중년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2002년부터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이들은 여느 가족보다 가까이에서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테고 맞벌이로 육아 도움이 필요하니 다 같이 살면 어떻겠냐”는 장남 부부의 제안이 다섯 가구가 머리를 맞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탄생시킨 것이다.

대가족으로 합을 맞춘 지 23년, 가족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이들 부부가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자녀와 손자·손녀를 돌봤다면, 이제는 후손들이 노부부를 보살핀다. 이동원 교수는 “부모 세대가 나이 듦을 인정하고 변화해야 새로운 단계에서도 원만한 가족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원을 그리듯 처음 태어난 자리,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신체 상태를 고려하면 나는 6~7살, 이근후 선생은 4~5살쯤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여 “처음엔 불편했지만 양육자가 그 시기 아이들을 돌보는 것처럼 자녀들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인생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 시절 부지런히 갈고닦은 지식은 중년과 노년에 더욱 풍성하게 결실을 맺었다. 교수 정년퇴임을 앞두고 1995년 함께 설립한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는 한국 가족 연구의 마중물이 됐고, 이근후 교수가 여든을 앞두고 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18개국에서 4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개인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는 지론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Intro. 한 지붕 다섯 가족의 탄생
Part 1. 따로 또 같이 존재하라
Part 2. 누구도 혼자 희생 마라
Part 3. 즐거움을 미루지 말아라
🏡따로 또 같이 존재하라
두 사람은 애당초 자녀들과 합가할 생각이 없었다. 1996년 2남 2녀가 모두 독립하면서 인생 2막을 모색하던 차였다. 다만 자녀 결혼으로 며느리나 사위처럼 새로운 식구가 생길 때면 6개월간 시한부 동거를 제안했다. “서로 잘 모르니 같이 살면서 한번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자녀들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고, 이때의 경험은 지금 형태의 가족을 꾸리는 밑거름이 됐다.
이근후 교수는 “우리가 대단히 창의적이거나 계획적으로 가족 모델을 실험한 것은 전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오해하길래 바로잡지 않고 그냥 뒀을 뿐”이라며 웃었다. 그는 “오히려 지극히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뭉쳤다”고 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모두 집이 없었어요. 각자 전세로 살고 있었죠. 그런데 넷이서 전세금을 모으면 집도 지을 수 있고, 자기 이름으로 된 집도 한 채 생기는 거잖아요. 서로 ‘윈윈(win-win)’이죠. 그래서 저희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갔어요.”(이근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