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울음 방법론

2025-01-19

거기, 정수리 표지석 그늘은 여전히 허공의 자리이네요 그늘은 담아도 무한대라고 하지요 개밥바라기별의 안부가 지금도 까마득한지요 다시 우는 방법을 칠만 년 전의 인류에게 물어볼까요, 깊어진 그림자가 주저앉아 있어요 얼레지 꽃진 자리가 자꾸 부풀어 올라요 몸속에 들앉은 절벽이 화르르 구겨진 구름을 매달아요 서러움 부추기는 솔바람 울먹울먹 울음을 삼켜요 전설 같은 고사목에 다시 잎이 피어날까요 우연을 가장한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어요 통곡으로 접속할 해발 천구백십오 미터,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우두커니... 우두커니 바라밀다의 근황이 궁금해져요 의문의 꽃잎들이 전생 몇 장 스치듯 지나가요 등짝 후려치는 가파른 고비길이 훌훌 날아 가버려요 언제나 내 편인 바람이 뜨거운 눈물 식혀주어요 누가 기뻐서만 살아갈까요

◇김미선=경남 진해 출생. 2010년 『불교문예』 등단. 사이펀의 시인들 회원. 시집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가 있음.

<해설> 누가 기뻐서만 살아갈까요? 는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이면서 압권이다. 무심코 툭 내뱉는 말 한마디 같지만, 이 시 전체에서 마치 몽환적 언술의 대미를 잘 장식하면서도 함축적 시인의 고뇌가 희망의 빛으로 번뜩이는, 그런 직관의 다름 아니다. 시를 참 맛있게 쓴다, 싶었는데 한군데 이런 번뜩이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울음 방법론에 대해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게 한다. “정수리 표지석” “다시 우는 방법을 칠만 년 전의 인류에게 물어볼까요,” , “우연을 가장한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어요” 등 간과하고 놓친 문장들이 서로 마주보기도 하면서 울음이라는 요리를 인공조미료 없이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시인에게 찬사를.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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