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여보, 나 왔어! 살아 나왔어!(2)

2025-01-18

최종두 울산예총 고문(시인, 소설가)의 1980년 삼청교육대 수난기(受難記)를 연재한다. 울산MBC 기자였던 최종두 고문은 1980년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군부대에 끌려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연재 글에는 인권을 짓밟는 ‘삼청교육’의 참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고, 1970~80년대 울산의 정치, 경제, 언론, 문화계 비사(祕史)도 엿볼 수 있다. 최 고문은 “1980년대는 찬탈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영혼을 뭉개버리는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전주 같은 목봉을 힘겹게 들게 하면서 서막을 열었다”며 “몽둥이와 총으로 지레 겁을 주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 제5공화국의 주구들”이라고 술회했다. <편집자 주>

재문이는 어른들이 나누는 얘기들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폭력배들, 소위 깡패 짓을 아버지가 어떻게 했다는 것이며 왜 그들과 어울려 놀다 끌려가서 지금과 같은 꼴로 나타난 것일까? 재문이는 그런 눈치였다. 그러나 내가 재문에게 해주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비참한 몰골을 만들어낸 배경, 이와 같은 현실을 만들게 된 역사, 인간사회에서 흔히 있게 되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그에게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 꼭 해주어야 할 말이 있다면 그가 더 나이를 먹고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었다. 불을 밝히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재문아 보아라!

아버지는 지금 네가 고이 잠든 시간에 이 글을 쓰면서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들의 평화로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도 너는 많이 자랐구나. 고맙다. 그러나 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겠니? 부끄럽고 너에게 미안한 생각뿐이구나.

이유야 어떻든 간에 아버지가 이렇게 치욕적인 벌을 받고 살아 돌아온 것을 그나마 감사하게 여긴다. 세상에는 바르고 올바른 것이 있는가 하면 바르지 못한 것도 숱하게 있기 마련이다. 정의가 있으면 정의가 아닌 것은 있어 때로는 정의가 아닌 것이 정의를 누르고 득세하는 경우가 있단다.

그러나 이 세상의 역사는 정의가 정의 아닌 것과 싸워 이겨온 것이 아니냐. 그래서 정의를 추구하면서 늘 정의가 아닌 것과 싸우는 것이다. 비록 일시적으로 정의가 짓밟힌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지. 너도 이제 성장해서 사회를 보는 식견이 커지면 깨닫고 알게 될 것이다.

아들인 너에게 아버지로서의 속마음과 하고 싶은 말을 지금 당장 다 털어놓지 못하는 것은 너는 앞으로 더 배우고 익히는 인간 성장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바르게 판단할 날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재문아!

아버지는 결코 이만큼 어이없이 벌을 받게 될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너와 네 동생들, 사랑하는 우리 식구들이 없다면 이런 모습을 너에게 보일 필요도 없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이 너무 힘들게 괴롭고 해서 극단의 길을 택하려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희들, 바로 너 때문에 그것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너희에게 안겨준 실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아버지의 억울한 멍에를 풀어주기 위해 더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모의 말을 들으면 네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나서 학업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때론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더구나.

사랑하는 아들 재문아!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엄마 역시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비겁한 낙오자들이 하는 짓이다. 나는 믿는다. 네가 반드시 극복하고 떳떳하게 늠름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승리의 시간을 위해 뼈를 깎듯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지금 한순간 좌절을 느끼고 있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 길임을 잊지 말아다오!

사랑하는 재문에게 아버지가.”

나는 이렇게 적은 편지를 재문의 포켓 속에 넣어두고 그 옆에 누워 꼬~옥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사흘 동안을 그렇게 방 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동네 의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오랫동안 대하지 못하던 TV는 섬뜩한 소식뿐이었다. 갑갑하기도 하고 울분 같은 것이 자꾸만 쌓이면서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장독 같았다. 거기다 교육장에서 나를 울린 피울음 같은 동료 교육생들의 비명소리는 귀를 틀어막아도 들리고 있었다. 귓속으로 솜을 틀어넣고 그 소리를 막아보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쉬지 않고 들려오는 것이었다.

처제가 갖다주는 두 달 치의 신문을 차례로 펼쳐 보았다. 첫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계엄사가 반공정신이 결여된 기자를 8월 10일까지 해고하도록 각 ‘보도기관’에 지시란 제목으로 1980년 7월 30일자에 실린 기사였다. 반공정신이 결여된 기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 것인지?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적색분자가 보도기관에 파고들어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을 고무 찬양한 자가 있었다면 그야 법에 따라 벌을 받는 게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다른 구실로 해고하고는 반공정신이란 그물로 위장해버린 터무니없는 망나니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신군부는 혀를 내두를 만큼 수많은 인원을 사회악 사범으로 몰아 3만518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기사가 1980년 8월 15일자 도하 신문에 실려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게 된 곳은 보도기관만이 아니었다. 공직 사회에서 행해진 숙정작업이었다. 평생을 국가를 위해 봉사한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와 통분에 빠진 선량한 가장들은 또 얼마나 될까?

세상은 꼭 물구나무선 채로 돌아가고 있다고 외쳐도 될 기사가 태반이었다. 뻔뻔스럽고 가소로워 방바닥을 치고 싶은 기사도 있었다. 전두환 장군이 경향신문과 가진 회견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민주주의를 토착화하고 복지를 구현하며 정의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개 잡듯이 뭉동이를 휘둘러 죽이고 더러는 병신을 만들어 버린단 말인가? 민주주의를 토착화하는 것이 헌법 질서를 유린하고 공공질서를 파괴한단 말인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벌써 해직 처리를 하고 나서 어이없는 계산 방법으로 퇴직금을 집으로 가져왔더라고 했다. 누군가가 화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는 말을 무심코 받아넘겼던 내가 이제는 화병으로 곧 죽을 것 같았다. “화병!” 그렇다.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을 것 같던 화병이라고 여겨왔지만 노년에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에게는 자식으로 인한 화병의 응어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기만 했다.

나는 한시바삐 어머니께로 달려가고 싶었다. 달려가서 어머니가 꿈에서 나타나 둘째 형님이 6.25 때 낙동강을 경계로 적과 대치하며 영천의 어느 과수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적 같은 사실을 나도 경험할 수 있었음을 아뢰고 싶었다.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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