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은 딸 공주라고 불러줘서, ‘보고싶다’며 매일 영상통화 걸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아빠.”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A씨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밤새 써 내려간 편지를 천천히 읊어갔다. 당연했던 일상이,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며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유족들은 그런 A씨를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79명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는 합동추모식이 18일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진행됐다.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 700여명과 정부·국회·지자체 관계자 500여명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국가무형유산 진도 씻김굿으로 시작으로 국민의례, 희생자 애도 묵념, 헌화·분향, 추모사, 추모영상, 편지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슬픔을 억누르며 비교적 차분히 진행되던 추모식은 유가족들이 희생된 가족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자 이내 슬픔으로 뒤바뀌었다. 유가족 일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가슴을 내려치거나 오열했다. 수습당국 관계자, 정치인, 추모객들도 눈물을 손수건으로 계속 닦아내거나, 숨죽여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A씨는 “아빠가 사라진 게 아니라 조금 먼 어딘가로 먼저가 우리(가족을) 기다리는 것”이라며 “그곳에선 고통 아닌 행복한 기억만 갖고 우리 가족을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A씨와 같이 이번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B씨는 “초등학생 때 매일 바나나우유 사주시던, 유행 뒤처지면 안 된다고 서태지, 조성모 음반이 나올 때마다 사다 주신 우리 아빠”라며 오열했다. 이어 “아빠 딸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다”라며 “그곳에서 친구분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우리 가족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아내와 딸을 잃은 C씨는 “상처 하나 없는 얼굴로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딸을 찾은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며 “하늘나라에서도 서로 떨어지지 말고 아빠가 갈 때까지 손 꼭 잡고 있어 달라”고 울먹였다.
참사 원인 규명 등 안전 사회를 위한 당부와 약속도 이어졌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가족들이 세상을 떠난 지 20여일이 됐지만 유가족의 시간은 사고 전에 멈춰 있다”며 “그분들의 꿈은 멈춰버렸지만 그들이 이루고자 한 일은 저희의 몫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싶다. 하나의 숨김도 거짓도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참사 원인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 일상과 안전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라며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모든 조사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유가족 여러분께 소상하게 알려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진상 규명과 유가족 지원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추모식은 추모곡 ‘내 영혼 바람되어’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유가족과 수습 당국은 추모식 이후 사고 현장을 방문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려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지난달 29일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 인근 방위각 시설과 충돌해 폭발했다. 이 참사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