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단군신화에서 불함문화권의 원시적 보편적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했던 단일한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의 혼합과 융합 속에서 형성된 다문화적 성격을 갖는다. 단일한 문화적 흐름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축적되고 정착되면서 서로 다른 유물과 유적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는 크게 산동반도와 낙랑 문화, 이 땅의 토착 세력, 남쪽 바다에서 온 남방계 농경문화, 그리고 초원의 유목민족에 의한 초원문화가 뒤섞이며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했고, 때로 조화롭게 섞여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최남선은 이러한 다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만주와 백두산 중심의 초원문화를 ‘불함문화’로 제시했고, 문화의 이동 경로로 중앙아시아의 천산, 바이칼 호, 대흥안령과 만주, 한반도, 일본을 연결하였다. 그는 동방문화의 원류를 ‘ᄇᆞᆰ’ 사상으로 보고, 그 사상의 발원지를 태백산(太白山)으로, 중심 인물을 단군으로 설정했다.
‘ᄇᆞᆰ’의 오랜 자형을 ‘불함’으로 보고 그 문화를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그는 불함문화권인 동이족(東夷族)의 거주지에 있는 ‘백산(白山)’을 태양신께 천제를 지내던 곳이라 하였다. 또한 ‘백산’은 단군이 유래한 곳으로, ᄇᆞᆰ 사상의 분포지를 추적하여 일본의 고대문화, 중국의 동부 및 북부 일대, 몽골과 중앙아시아 일대를 불함문화권으로 연결하였다.
그리고 그는 불함문화의 잔존 요소로 샤머니즘을 제시하였다. 태백산인 백두산이 가장 중심적인 ‘백산’이며, 튀르크·몽골권의 하늘신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연결 지어 단군에 대한 전승을 해석했다. 백두산이 한민족의 기원이며 민족정신의 근본이라는 인식은 ‘단군의 후예’, ‘배달민족’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져 국가 통합의 이념적 요소로도 작용했다.
불함문화는 단순한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초원문화의 전통과 연결하는 시도였다. 백두산 천지는 중앙아시아에서 비롯된 세계관의 연속이자, 민족의 독창적 사상이 응집된 성지로 이해되었다. 곧 한민족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는 자각을 담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 산과 물을 숭배하는 초원민족의 오랜 전통이 있었다.
산과 물로 연결된 초원문화
중앙아시아 초원은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부로, 천산과 알타이, 몽골고원, 바이칼 호수로 이어지는 초원문화의 시원이다. 초원 민족은 성산(聖山) 숭배의 산악신앙을 가졌고, 그 중심에 옛 이름 ‘백산(白山)’으로도 불린 산군이 있었다.
‘천산(天山)’은 동서로 길게 뻗은 거대한 산맥이며, 당대에는 다른 명칭으로도 일컬어졌다. 동쪽에서 가장 높은 보거다봉(博格達峰, Bogda Peak, 5,445m) 아래에는 사방이 봉우리로 둘러싸인 ‘천지(天池)’가 있다. 더 넓혀 보면 초원의 젖줄인 이식쿨 호수(Issyk-Kul Lake) 역시 산들로 둘러싸인 담수호로, 농경과 목축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수원이었다.
초원민족은 기후가 차갑게 식어 목초지가 줄면 가축을 먹일 수 없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기후변화는 유목민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고, 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생존의 기반이었다. 천산에 인접한 알타이산맥(阿爾泰山脈)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금’을 뜻하는 말(altunai)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이 지역은 천산을 중심으로 남로·북로·중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도 카자흐스탄·중국·몽골과 국경을 접하면서 투르크계와 몽골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곳이다.
더 동쪽으로 몽골의 항가이산맥, 동북쪽의 헨티산맥, 바이칼 지역, 남쪽의 만주 흥안령산맥으로 이어진다. 이 지역의 성산인 부르칸 칼둔(Burkhan Khaldun)은 ‘부르칸’의 발음이 ‘불함’과 유사하여 불함문화론에서 고유한 계통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칭기스 칸의 매장지로 전해지는 산이라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바이칼 호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내륙의 바다로, 깊고 푸른 물빛과 주변 산맥이 성역과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초원민족에게 바이칼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전통은 남쪽과 동쪽으로 이어졌고, 그 최종 도착지 가운데 하나가 백두산이었다.
백두산의 ‘천지(天池)’ 역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호수로, 하늘과 인간이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천산의 천지와 바이칼의 전통이 백두산 천지로 이어졌으며, 백두산 천지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 초원문화의 흔적들
한반도의 문명은 중국 문명과 끊임없이 교류했지만, 동시에 북방 초원문화와도 긴밀히 이어져 있다. 동아시아 문명을 이야기할 때 흔히 중국의 영향만 강조되지만, 북방에서 내려온 초원민족의 영향은 조선의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 ‘오랑캐의 역사’로 폄하되어 우리의 인식에서 멀어져 있었다. 중국에서 문자·유교·불교가 들어왔다면, 북방에서 무속, 기마술, 금속 기술, 산과 물을 숭배하는 초원적 세계관이 전해졌다. 두 흐름이 한반도에서 융합되며 독특한 문명이 이루어졌다.
이를 무시하고 중국의 영향만 강조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초원민족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첫째, 한반도의 청동기와 철기는 초원민족의 이동과 함께 들어왔다. 고조선의 비파형동검, 한반도의 세형동검은 모두 북방계 청동기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초원민족의 동진 과정에서 철기가 유입되었고, 이는 군사력을 높이고 농업 생산력을 증가시켰다.
둘째,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널리 분포한 고인돌과 돌무덤은 초원문화의 적석(積石) 전통과 닮았다. 돌을 쌓아 죽은 자를 기리는 관습은 초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죽음을 신성시하고 영혼과 소통하려는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셋째, 단군신화 속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초원민족의 하늘 숭배 사상과 연결된다. 샤머니즘은 오랜 배척 속에서도 무속으로 이어졌고, 하늘과 산·물을 숭배하는 천신 사상은 우리의 정서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 고대 신앙 가운데 산이 민속 종교의 대상이자 산신으로 인격화되는 출발점이다.
초원에서 열도까지 이어지는 역사
중앙아시아의 천산과 바이칼에서 이어진 전통은 백두산 천지에서 한 단계 완성되었다. 한반도의 문명은 다층적이다. 중국·남방·토착 문화가 함께 얽혔지만, 그 가운데서도 중앙아시아 초원민족의 이동은 세계사적 맥락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기후와 환경에 따라 이동하며 물과 산을 신성시하는 사상을 발전시켰고, 이를 한반도에 전승했다. 바이칼의 푸른 물, 천산의 천지, 그리고 백두산 천지는 모두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공간, 물과 산의 숭배라는 세계관이 그것이다.
이 전통은 한민족의 신화와 문화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최남선의 불함사상은 이러한 흐름을 근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였다. 그는 백두산을 민족정신의 근원으로 규정하며 우리의 뿌리를 초원문화와 연결했다. 백두산은 광활한 중앙아시아 초원과 이어진 끝자락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의 깊은 연결도 함께 이해해야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불함사상은 식민지기의 상황 속에서 제기된 역사 담론이지만, 단순한 시대 산물을 넘어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민족이며, 그 문화가 다양한 융합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군신화는 원시적 신앙의 소산으로 보되, 유라시아 중앙에서 내려오는 ‘불함문화’의 공통적 산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역사는 그 시원이나 기원 속에서 해석되어야 진실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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