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 117호인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조선의 정궁이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270년 넘게 방치된 궁을 고종 재위기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중건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여기저기 소실·훼손된 걸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왕이 연회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한 경회루가 있고,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왕이 어좌에 앉아 법령 반포나 국가 중요 의식을 거행한 근정전은 사극에 등장하는 조선 궁궐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경복궁은 권위주의 정권 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이곤 했다. 5·16 군사쿠데타 2주 뒤인 1961년 5월29일, 근정전 앞에서 쿠데타에 참여한 군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이 열렸다. 국가기록원 정부기록사진집에는 수백명의 장병을 앞에 두고 반라의 여성들이 춤추는 사진이 “촬영일 1961년 5월29일, 참석자:미상, 5·16 참여군인 위문공연 모습”이라는 설명과 함께 남아 있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은 경회루에서 국내외 인사 1200여명을 모아놓고 대통령 취임 축하연을 했다.
민주화 이후 명맥이 끊긴 그 ‘왕놀이’에 김건희씨도 합류하고 싶었던 걸까. 김씨는 휴궁일인 2023년 9월12일 경복궁을 방문해 2시간 가까이 머물면서 근정전 내부 어좌에도 앉았다고 한다. 김씨가 경회루 2층에 올라 슬리퍼 차림으로 짝다리를 짚고 선 사진도 공개됐다. 김씨 옆에는 그에게 금거북이를 건넸다는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서 있다. 윤석열 부부가 함께 혹은 따로 종묘·경복궁·창덕궁·덕수궁을 찾은 건 총 11회에 달한다. 김씨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외부인과 차담회를 하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신실까지 둘러봤다. 어느 권력자보다 잦고 센 ‘왕놀이’를 한 것이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경선 때 손바닥에 ‘왕’자를 그려넣고 TV토론에 나왔다. 무속에 심취했다는 부부의 기괴함이 닮은꼴이다. 윤석열은 왕처럼 통치했고,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절대권력을 틀어쥐려고 내란을 일으켜 자폭했다. ‘V0’로 불린 김씨는 배후에서 국정을 마음껏 주물렀다. 일종의 상왕이었던 셈이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그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