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년 노르웨이로 입양된 앨리스 앤더슨(53)은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 이름은 강부자. 입양 서류엔 정확한 생일도 없이 ‘고아’로 기재됐다. 그는 1996년에야 자신의 신장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여러 장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지속적인 설사와 혈변을 겪고 있고, 음식물을 삼키기조차 어렵다. 폐섬유증도 앓고 있어 일할 때를 제외하곤 외출을 하지 않는다”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신장이 하나인 이유가 유전적 요인인지, 발달 과정에서 생긴 문제인지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유전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그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혼합 결합조직 질환(Mixed Connective Tissue Disease)’으로 보인다는 진단 소견을 받았다.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앨리스가 친생부모 정보를 찾아 나섰지만, 8년 동안 노르웨이와 한국 정부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2020년 그는 노르웨이 총리에게 입양인의 알 권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으나 “이 문제는 한국이 해결해야 하며 노르웨이는 책임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노르웨이 의료진 역시 “앨리스의 질병이 특이하고, 그가 노르웨이계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에 자원을 투입할 수 없다”고 했다.
2016년과 2019년에는 직접 한국에 방문해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가까스로 ‘이리(익산)의 강씨 가문’이라는 단서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을 뒤져 친모의 5촌을 찾아냈다. 해당 정보를 토대로 홀트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은 없었다. 이후 아동권리보장원이 친생모에게 우편과 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친생모가 입양 사실을 강하게 부인해 사안은 종결됐다.
친생부모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앨리스는 “어려운 시기였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단지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해외 입양인은 한국인과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노르웨이는 절대 자국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지 않는다. 한국도 한부모 가정이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적 이유에도 친생부모 정보 얻지 못해
의료적 이유로 친생부모를 찾는 건 앨리스만이 아니다. 생후 5개월에 프랑스로 입양된 마티외 성탄(38)은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atal Familial Insomnia, FFI)’을 의심받고 있다. 이는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희소병으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친생부모의 유전자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동권리보장원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의 아내 로리안 시몬(41)은 “남편의 상태가 악화해 의식이 거의 없고 대화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티외의 두 자녀 역시 이 병을 유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입양특례법 제36조에 따르면 입양인은 아동권리보장원 또는 입양기관에 입양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고, 기관은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 정보를 공개하게 돼 있다. 다만 친생부모가 사망했거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 의료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동의 없이도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조항에 따라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이 공개된 사례는 거의 없다. 입양인의 의료권·생명권 침해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아동권리보장원은 “마티외 성탄의 경우 친모가 생존해 있다. 동의 의사 확인을 위한 우편을 본인이 수령했으나 회신이 없어 ‘친생부모가 사망했거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인력과 재원 부족으로 인해 입양인의 어려운 상황을 돕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입양인이 입양정보공개청구를 했을 때 정보를 얻는 비율은 20%에도 못 미친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외 입양인의 입양정보공개 청구 건수는 2021년 1327건에서 2023년 2717건으로 3년 새 2배 뛰었다. 하지만 친생부모의 인적사항 공개율은 3개년 평균 16.4%에 그쳤다.
입양인 알 권리보다 친생부모 정보보호 우선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8조는 국가가 국적·이름·가족관계를 포함한 아동의 신분을 지켜주고 보호해 줄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다. 한국도 협약을 비준했지만,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인의 알 권리보다 친생부모의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하고 있다. 반면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등은 입양 정보 공개 과정에 친생부모의 동의를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 ‘뿌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다. 영국·독일·이탈리아 등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이익형량(상충하는 이익을 비교하여 더 중요한 가치를 보호하는 법적 판단)에 따른 비공개 사유를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법제 정비와 함께, 한국이 약 20만명에 이르는 해외 입양인을 배출한 ‘아동 수출국’이라는 불명예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입양특례법상 입양정보 공개 제한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를 담당한 김선휴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친부모가 명시적으로 정보 공개에 동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례에서 비공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경은 국경너머인권 대표는 “가문, 문화적 배경 등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것도 인권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보장되는 권리가 입양인들에게는 배제돼왔다”면서 “국가기관이 책임지고 입양인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