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속 고래’가 항상 고수익만 낼 수 있나

2025-09-11

국내 증시엔 ‘연못 속 고래’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1269조원의 기금을 쌓아둔 국민연금이다. 같은 시점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2512조원)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연못 속 고래는 너무 큰 덩치의 자금(국민연금)이 상대적으로 작은 물(국내 증시)에서 놀고 있다는 뜻을 담은 비유적 표현이다.

물론 국민연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금융시장에도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 현재 쌓아둔 돈 전액을 코스피 시장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국민연금의 움직임은 국내 증시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국민연금, 국내 증시에선 ‘대박’

해외 손실로 전체 수익률 축소

투자 위험 관리에도 신경써야

올해 상반기는 이런 연못 속 고래가 활개를 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지난달 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발표한 올 상반기 수익률을 살펴보자. 국내 주식에선 31.3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8.61%)과 비교하면 월등히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으로 한때 24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가 지난 6월 새 정부 출범 이후 3000선을 돌파하는 호조를 보인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종합 성적표는 어떨까. 아쉽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올 상반기 연금 기금의 전체 수익률(4.08%)은 3년 만에 가장 부진했다. 2023년과 지난해 상반기에 각각 9%대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된다. 올 상반기 4% 남짓한 수익률도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지만, 지난 2년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꺾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은 크게 다섯 종류로 구분한다. 국내 주식과 채권, 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부동산·인프라 등)다. 올 상반기 해외 주식의 수익률(1.03%)은 1년 전(20.47%)과 비교해 뚝 떨어졌다. 특히 해외 채권(-5.13%)과 대체투자(-2.86%)에선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했다. 자세한 사정은 비공개이기 때문에 외부에선 알 수 없다.

마음 같아선 국민연금이 항상 고수익을 내면 좋을 것이다. 기금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2065년에는 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을 것이란 게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망이다. 만일 기금 수익률을 매년 1%포인트씩 높인다면 연금 고갈 시점을 2072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보건복지부는 설명한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무턱대고 고수익을 좇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고수익과 고위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고수익을 추구한다면 그만큼 고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보내는 주문은 수익률 상승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이걸 뒤집어보면 일정 부분 투자 위험이 커지는 것도 감수하라는 뜻이다.

이게 꼭 바람직하냐에 대해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어쨌든 정부가 정책 방향을 이렇게 정했다면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투자 위험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현 복지부 1차관)은 “수익 위험의 모양이 좋은 대체투자를 조금 더 확대하면 전체적인 위험이 조금 내려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 대체투자 부문에서 손실을 기록했다. 투자 위험의 관리가 말은 쉬워도 실제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

국민연금 투자 위험에 대한 정보가 ‘깜깜이’란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얼마 전 국민연금이 스스로 내놓은 반성문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공개한 ‘국민연금 공시체계 강화를 위한 글로벌 기금 공시수준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캐나다·네덜란드 등 해외 주요 기금들은 단순한 성과 나열이 아닌 핵심 소통 수단으로 연차 보고서를 활용했다. 특히 금융위기나 전쟁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큰 손실이 발생할지 점검한 결과(스트레스 테스트) 등 다양한 위험 관리 정보도 공개했다. 반면에 국민연금 연차보고서는 교과서적인 개념 나열이나 추상적인 설명에 그쳤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연못 속 고래는 언젠가 소멸할 운명이란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30년대 초반이 되면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만으로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때부터는 연금 기금이 쌓고 있는 수익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국내 증시 등에서 국민연금의 투자 여력도 제한될 것이다. 차기 정부의 문제라고 마냥 손 놓고 있는 건 무책임하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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