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배려와 존중, 그리고 공감

2025-01-10

멘토는 멘티의 손을 잡고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멘티가 먼저 손을 내밀면 그와 보조를 맞추며 ‘함께’ 나아가는 자다.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안내자가 먼저 그의 손이나 팔을 잡아 이끌면 금세 넘어지기 십상이다. 나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 속도면 적당하겠다 싶어도 그의 보폭과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안전하게 인도하려면 안내자가 앞장서는 게 아니라 그가 안내자의 팔을 잡고 곁에서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발걸음을 맞출 수 있고 걷다가 발에 걸리는 게 있어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쌍팔년도 꼰대 리더십은 이제 그만

‘앞에서’ 끌기보다 ‘함께’ 나아가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동네 주변에서도 저녁 산책을 나온 강아지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강아지는 어엿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산책도 다를 게 없다. 가족이 리드줄을 잡고 옆이나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강아지가 맘껏 세상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게 산책하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끊임없이 줄을 잡아당기며 자기 가고 싶은 대로만 가고 강아지는 뒤에서 끌려가기에 급급한 모습 또한 여전한 게 현실이다. 사람이 산책의 주인공이고 강아지는 그냥 뒤따라오는 존재일 뿐이란 이 같은 태도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또 하나의 사례다.

보스는 ‘하라’고 하고 리더는 ‘하자’고 한다. 이게 구시대 보스와 21세기 리더의 가장 큰 차이다. 한 글자가 다를 뿐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보스는 이미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치지 않는가. 내가 잘났고 내 선택이 무조건 옳으니 나만 따르라며 소영웅주의에 빠진 자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지 않은가. 문제는 사회 지도층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 기성세대가 군사 문화와 유교 질서에 젖어 있다 보니 수평적 리더십은 영 낯설어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부터 ‘꼰대’ 세대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웨이터의 법칙’은 빌 스완슨이 정리한 33가지 비즈니스 규칙 중 가장 널리 회자되는 불문율이다. 식당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절대 비즈니스 파트너로 삼지 말라는 경구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이 적잖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자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면 자신의 인격도 같이 내려가기 마련. 결국 자신과 연결된 모든 사람을 최대한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존중받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란 얘기다.

한국 정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세 때만 큰절하고 선거만 끝나면 꼰대가 웨이터 대하듯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이 무시하는 불편한 진실. 20세기 수직적인 보스의 시대는 가고 21세기 수평적인 리더의 시대가 왔음에도 그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 세상은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마냥 철 지난 제왕적 리더십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 이 같은 그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게 바로 오늘의 한국 정치 아니겠는가.

쌍팔년도의 어원은 1955년. 단기 4288년의 ‘88’을 따서 낡은 구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통했다. 이후 1988년으로도 통용됐지만 ‘시대와 맞지 않는’이란 의미엔 변함이 없다. 이제 우리 사회도 쌍팔년도 꼰대 리더십은 역사 속으로 떠나보낼 때가 됐다. 최근 ‘87년 체제’의 극복이 화두지만 제도적 개혁 못지않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건 쌍팔년도 리더십과 작별하고 배려와 존중·공감의 새로운 리더십을 확립하는 거다. 국가의 지도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과 보조를 맞추며 ‘함께’ 나아가는 자다. 그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이자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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