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인생 같다. 나라 안팎으로 사건 사고 소식을 들을 때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디’는 생각이 든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나는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난민이 될 수도 있다. 난민을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난민이 되기 전에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비행기 사고로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또한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 덕분에 1987년에 태어난 내가 무사히 살고 있다.
평온한 일상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아침에 뿔뿔이 집 밖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잠드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는지, 급식은 뭐 나왔는지, 주말에 뭘 하고 싶은지 등 소소한 대화가 소중하다.
점점 나와 상대에게 바라는 게 옅어진다.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나서 최종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긴 공부 끝에 내 자리가 있을까? 종착지가 어디일까? 나조차 궁금했다. 때로는 조바심도 나고 심란했다. 경력을 쌓고 있는 동기를 볼 때,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는 내 나이와 작은애의 병원 일정이 그랬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모르고 착실히 돌아가는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지금을 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번 학기, 이번 달, 이번 주, 오늘을 살고 있다.
무언가 되고자 이리저리 애쓰는 나와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내가 있다. 학기 중에는 앞의 내가 하루를 최대치로 산다. 방학 때는 뒤의 내가 숨 고르고 자박자박 걷는다. 하루에 할 일도 한 개나 두 개만 한다. 그 정도만 해도 된다고 나를 봐준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기적이다. 이 또한 부모 욕심이겠지만 이것만은 바라고 또 바란다. 자녀가 생겼을 때 심장 소리에 감격하고 태어났을 때는 손가락 개수에 안도했던 날을 자꾸 까먹는다.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소아암을 작은애가 진단받았을 때 ‘하긴, 행운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거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네. 내가 좋은 남편 만나느라 행운을 다 썼나 보다.’ 덤덤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애의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받을 복이 한참 남아 있음을 느낀다. 수시로 친절한 도움을 받았고 본받고 싶은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무엇보다 작은애의 경과가 좋은 것이 큰 복이다. 이제는 묶을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이 자랐고 면역력 걱정 없이 학교 급식도 먹는다. 작은애는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잘 크고 있다.
요즘 아침마다 작은애의 등교를 동행하고 있다. 혼자 갈 법도 한데 굳이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것도 정문 앞까지 가자고 한다. 작은애는 정문에서 몇 발자국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한 번 더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한다. 매번 이 의식을 치른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품 안에 있을 때 실컷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큰애도 저녁에 학원 마치고 데리러 와달라고 한다. 집에 오는 길이 어두워서 무섭다며. 나 닮아서 겁이 많으니 선뜻 마중 나간다. 애들이 저러는 것도 다 한 때지 싶어서 내가 해줄 수 있을 때 기꺼이 해주고 싶다.
애들 키우면서 박사과정 하는 거 힘들지 않냐는 질문도 있는데 도리어 아이들한테 배려받을 때가 많다. 내가 학기 중에는 밥상이 부실해서 미안했는데 이제 방학이라 가족들 잘 먹이고 옆에 있어 주고 싶다. 우리 집 가훈으로 삼은 ‘있을 때 잘하자’처럼.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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