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메프가 결국 회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파산 절차로 내몰리면서, 채권자들의 권리구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이 위메프 회생폐지 결정을 내린 뒤 채권자들이 즉시항고로 맞섰지만, 법원이 요구한 보증금 30억 원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피해자 대표 7명이 나눠 내야 하는 금액은 1인당 4억 원이 넘는다. 채권단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은우산 비대위 (티메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2일 서울회생법원에 30억 원 항고보증금 결정에 대한 면제 요청 신청서를 제출했다.
'항고보증금'은 항고를 제기하기 위해 법원에 지불해야 하는 일종의 담보금이다. 채무자회생법은 항고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면 그 사이 상대방이나 다른 이해관계인이 손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 항고 시 보증금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악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보증금은 원칙적으로 절차 종료 후 돌려받지만, 항고가 기각돼 상대방이 손해를 입으면 그 금액이 보증금에서 충당된다. 사실상 채권자 입장에서는 거액을 선납해야 하는 부담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보증금 액수 책정은 사건의 규모, 채권자 수, 지연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한다. 기업 회생·파산 사건은 이해관계인 범위가 넓고 피해가 막대해 수십억 원대 보증금이 정해지기도 한다.
특히 위메프는 이른바 '티메프 사태'로 10만 명이 넘는 소액 채권자가 얽혀 있다. 결국 법원이 절차 지연 시 담보권자 등 다른 채권자들의 권익이 침해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30억이란 보증금을 책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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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메프 파산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권자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채권 회수 분쟁이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한다. 티몬이 회생 개시에 성공한 것과 달리 위메프는 좌초하면서, 항고 외에는 구제 수단이 막힌 상황에서 거액 보증금은 사실상 ‘항고권 봉쇄’라는 게 채권단의 주장이다.
비대위는 입장문에서 “피해자들에게 ‘재판조차 받지 말라’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며 “가해자는 대형 로펌의 방패 뒤에 서 있는데 피해자들은 법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1조8천억 원 피해자들이 티몬에서 고작 57억 원을 받고, 위메프 항고보증금까지 내면 끝이냐”며 분노를 쏟아냈다 .
이어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측면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비대위는 “보증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항고할 수 있다면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오히려 가장 높은 장벽이 된다”며 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가운데 법원은 피해자 권리구제와 동시에 파산 절차 지연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도 항고보증금 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한 바 있다. 회생계획 불인가결정에 대한 재항고에서만 보증금을 요구하는 규정에 대해 헌재는 “회생계획 인가결정에 대한 재항고는 회생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불인가 재항고는 절차를 지연시켜 이해관계인에게 큰 피해를 준다”며 합리적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결국 이번 사안을 두고 “법원은 법리에 충실했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자 권리구제를 가로막는 벽이 됐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규모 사회적 사건에서는 담보금 감액이나 면제 같은 재량적 판단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항고보증금 제도의 법리와 현실 간 간극을 드러낸 대표 사례”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