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연구

2023년 11월 미국 버지니아 주 뉴포트뉴스.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유일한 조선소이자,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진수(1965년)됐던 이 공간은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거대한 도크 옆으로 서 있는 골리앗 크레인은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된 듯 녹이 슬어 있고, 한때 수백 명의 용접공이 분주히 오갔던 조립 라인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지난 공정의 흔적만이 남아 있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금속성 충격음이 오히려 이 고요함을 더 깊게 했다.
“예전엔 이 부두에 대형 선박이 줄지어 진수됐죠. 그런데 지금은 매년 한두 척도 겨우 나와요.”
은퇴를 앞둔 40년 경력의 선박 용접사 마이클 하워드는 눈을 좁히며 조용히 말했다. 그의 뒤편 ‘헌팅턴 잉걸스(Huntington Ingalls)’ 간판이 선명한 조선소 건물은 을씨년스럽게 외벽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조선 물량의 70%를 건조하던 미국. 미국 조선의 심장은 이제 그 위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선소는 점점 줄었고, 숙련 노동자들은 떠났다. 남은 것은 국방부의 군함 발주에만 의존하는 좁아진 생태계와 무너진 생산 라인뿐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가장 큰 조선소라는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잉걸스 조선소의 쇠락은 정우만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상무가 직접 두눈으로 본 광경이다. 그는 당시 방위사업청과 미해군 해상체계사령부(NAVSEA)가 주관한 한미 함정사업 교류 협력회의 일환으로, 미국 주요 방산 조선소를 방문했다. 정 상무는 “현장을 둘러 봤을 때 놀라울 정도로 시설이 노후화된 부분이 많았다”며 “조립 공정도 곳곳이 개선할 여지가 보였다”고 회고했다.
어쩌다 미국은 ‘해양 제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선 재건의 꿈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 과정에서 K조선은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항해는 잉걸스 조선소의 녹슨 도크에서부터 시작된다.
1. 전쟁이 낳은 조선강국

“리버티 쉽(Liberty Ship)이 없었다면, 유럽 전선은 무너졌을지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9월 28일 뉴욕타임스 1면에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미국 리버티쉽에 대해 찬사를 표하는 기사가 실렸다. 처칠은 “12개월 간 500척에 달하는 리버티쉽이 건조돼 미군과 연합군의 보급을 가능케 했다”며 “나치독일마저 (리버티쉽을 만든) 미국의 실력을 안다. 리버티쉽은 ‘승리의 함대(Victory Fleet)’”라고 치켜세웠다.
전쟁은 미국을 조선 강국으로 만든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거대한 철판이 부딪히는 소리, 증기 망치가 울리는 조선소. 1940년대 초 미국의 조선소는 24시간 불을 끄지 않았다. 세계대전의 전운 속에서 미국은 전례 없는 조선 건조능력을 쌓아 올리며 ‘세계 최대 조선 강국’으로 부상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면전을 벌일 때 미국은 선박 부족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루스벨트 대통령은 리버티쉽을 비롯한 대량 생산형 군수 선박 건조에 착수했다. 전쟁 전까지 미국은 조선 기술에서 유럽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조선의 포드(Ford)식 생산’에 주목했다. 기존의 수작업 위주 건조 방식에서 벗어나 표준화된 부품 생산, 용접 공법 도입, 모듈화 건조 방식 등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리버티쉽은 다양한 조선소에서 동시에 건조가 가능했다. 한 척을 만드는 데 걸리던 시간이 초기에는 평균 230일이었지만, 숙련도가 쌓이자 단 4일 만에 진수되기까지 했다.
미국은 여성·노동자를 대거 투입하는 ‘전시 산업 총동원 체제’를 구축하며 인력난을 해결했다. 이들은 단순 보조를 넘어서 용접공, 기계공으로 활약했다. 전기 아크 용접, 프리패브(prefabrication) 공법, 디젤-전기 추진 시스템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공법도 적용됐다. 이들 기술은 전쟁 이후 민간 선박, 상선, 석유 운반선, 유람선 등 상선 분야로도 확산되며 미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총 2710척의 리버티쉽이 건조됐다.

해군 전력 측면에서도 미국은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항공모함 105척, 구축함 349척, 잠수함 203척 등 총 6000척이 넘는 군함을 건조하며 단숨에 세계 최대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특히 ‘에식스급 항공모함’은 이후 수십 년간 미 해군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