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혼수·예식 부담 줄인 네덜란드
결혼만큼 강한 구속력 ‘등록파트너십’
시청서 등록하면 OK… 경제적 부담↓
관계 성립 땐 인척관계·상속 등 적용
두 가족 아닌 개인 결합… 젊은층 선호
네덜란드 출생률 1.43명… 한국의 2배
등록파트너십서 태어난 아이 13.6%
“낮은 출생률은 경제적 이유 가장 커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선택폭 확대”
“70명 정도 불러서 결혼식을 하니 한국에선 ‘스몰웨딩’이라고 했는데 네덜란드 친구들은 큰 결혼식을 한다며 놀라워했다.”
임모(35)씨는 2021년 네덜란드 유학 도중 동갑인 남편 웨슬스(35)를 만났다. 지난해 1월 남편 웨슬스와 등록파트너십(Registered Partnership)을 맺은 후 지난 5월 결혼식을 올렸다. 등록파트너십은 동거 커플에게 결혼에 준하는 자격과 책임을 두는 제도다. 결혼에 비해 등록과 해지가 간편하다. 결혼 서약과 결혼식 등이 동반되는 결혼과 다르게 등록파트너십은 시청에서 서류만 작성하면 된다.
19일 네덜란드 통계청(CBS)에 따르면 202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아기 중 42.1%가 결혼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는 2002년 29%보다 크게 상승한 수치다.
등록파트너십 커플은 ‘기혼’으로 산정한 점을 감안하면 전통적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비율은 더 적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네덜란드 출생률은 2023년 1.43명으로 같은 해 0.72명인 한국의 2배에 가깝다.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가 현지인과 결혼한 전청아씨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중시하는 한국과 다르게 네덜란드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가족 형태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결혼 부부, 등록파트너십 커플, 동거 계약서를 작성한 커플과 서면 계약 없이 동거하는 커플이다. 네덜란드는 공증인을 통해 동거 계약서를 작성하면 동거 관계여도 파트너 연금제도나 부동산담보대출 등을 받을 수 있어 일부 동거 커플이 활용한다. 또한 네덜란드는 비혼커플도 아이가 있으면 결혼 가정처럼 출생·아동·가족 수당을 지원한다. 아동에 대한 예방접종, 발달, 성장 등을 관리하는 보건소인 ‘콘쉴타티뵈레아우’, 만 4세부터 갈 수 있는 국립학교 등이 무료다.
네덜란드 등록파트너십은 프랑스 팍스(PACS·시민연대계약)보다 더 혼인과 유사한 지위를 인정한다. 등록동반자관계가 성립하면 상대방의 혈족과 인척관계가 발생하고, 부부간의 권리, 의무도 똑같이 인정된다. 배우자 상속에 관한 규정, 배우자에 대한 부양의무 등이 법적부부와 동일하게 적용된다.
헤어지는 경우에도 팍스는 당사자의 의사 표명만으로 해지가 가능한 반면 등록파트너십은 이혼과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법원의 재판도 거쳐야 한다. 마샤 안토콜스카이아 암스테르담 자유대 법학부 교수는 “네덜란드 등록파트너십은 프랑스와 벨기에보다 강한 결합을 요구하면서도 독일, 영국 등과 다르게 처음부터 이성 간 등록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결혼과 법적으로 동일한 등록파트너십
네덜란드 시민들은 결혼을 두고 ‘올드패션’(Old fashioned)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선 등록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 커플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CBS에 따르면 2022년 출생아 중 등록파트너십 관계의 부부에서 태어난 아이는 13.6%다. 2011년에는 등록파트너십 관계의 부부에서 태어난 아이가 3.5%에 불과했다. 네덜란드 국립 인구학 연구소(NIDI)의 루벤 반 할렌 박사는 “네덜란드 청년들은 등록파트너십을 확실히 선호한다”며 “결혼을 하려면 결혼식도 해야 하고 결혼반지를 준비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든다. 등록파트너십은 이러한 비용 부담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청년들도 결혼과 출산에서 고민하는 지점은 역시 비용이다. CBS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주택 가격은 2024년 9월 기준 1년 전보다 평균 11.4% 더 비쌌다. 이는 2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반 할렌 박사는 “낮은 출생률 문제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한국에서 결혼 비용이 쳥년에게 큰 부담이라면 등록파트너십과 같은 제도 도입이 일정 부분 (출생률 반등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등록파트너십을 개인의 계약으로 한정하는 시선도 이를 선호하는 분위기에 한몫한다. 반 할렌 박사는 “등록파트너십과 결혼은 법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사회적으로 결혼은 두 가족의 결합이라면 등록파트너십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고 보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웨슬스는 “아이들도 부모의 결혼 여부를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임씨가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등록파트너십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도 “한국에서 등록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했다”며 “네덜란드는 관계가 개인 위주다. 시부모님과도 만나면 이야기 나누는 정도고 용돈을 주고받거나 며느리로서 역할이 있지 않다”고 했다.
◆비혼출산은 ‘선택지’ 중 하나
다만 비혼출산을 인정하는 제도가 네덜란드 전 지역의 가족 형태를 바꾼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개방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전통적인 개신교 사상이 뿌리 깊은 나라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남서부의 젤란트에서 북동부의 오버이셀로 이어진 ‘바이블벨트’(Bible belt)라고 부르는 지역은 보수적인 가치를 중시한다. 해당 지역에서는 여전히 비혼출산 비율이 낮다. CBS 자료에 따르면 바이블벨트의 비혼출산 비율은 2022년 기준 대부분 35% 미만이며 이 중 우르크와 스타포르스트 지역은 약 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제도 변화가 한국 가족 형태의 다양한 인식을 이끌 수 있다고 봤다. 가족법 전문 민디 모스크 변호사는 “한국에서의 비혼 출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은 ‘각종 불편을 감당하며 출산을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일 수도 있다”며 “비혼 출산을 까다롭게 인정하는 제도가 개선되면 인식이 바뀔 수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 할렌 박사는 “비혼부부를 인정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짚었다. 비혼출산을 인정하는 것이 가족을 만들 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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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글·사진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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