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차 박모씨(37)는 지난달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직장에 들어간 직후부터 13년 가까이 청약통장을 유지했다. 이미 가입기간 및 총액만으로도 1순위 청약자격을 얻은 상태다. 박씨는 그러나 “신혼부부 특별공급 조건도 이미 끝났고, 아이가 1명 밖에 없어 청약점수도 낮다”며 “부부합산 소득은 높은 편이라 공공청약 조건에 맞지 않고 일반청약은 대출이자를 감당하며 살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모씨(34)는 청약저축 만기일이 돌아온 지난달부터 새로 입금을 하지 않고 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4년밖에 되지 않아 납입금액도 많지 않다. 그는 월 납입인정액이 기존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납입을 포기한 상태다. 신씨는 “공부를 오래해서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직장을 다니지만 월 25만원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며 “당첨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나 같은 1인가구가 분양받아 집을 살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11월부터 청약통장 월 납입 인정액을 상향조정한 가운데 청약통장 가입자수가 한 달 새 7만명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통계자료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주택청약종합통장·청약저축·예부금) 수는 2671만9542명으로 9월(2679만4240명)보다 7만4698명 감소했다.
정부가 청약통장 금리를 기존 2.0~2.8%에서 2.3~3.1%로 0.3%포인트 올리는 유인책을 내놨지만 신규가입자보다 이탈자가 더 늘어난 것이다.
청약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청약통장을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지만 상향된 월 납입액에 대한 부담과 낮은 당첨 기회, 집값 상승과 함께 상승한 분양가 부담 등을 이유로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3월부터 배우자의 청약통장 가입기간 점수를 최대 3점까지 추가 반영하면서 사실상 청약통장 월 납입 인정액이 기존 20만원(부부 각 10만원)에서 50만원(각 25만원)으로 늘어난 것도 이탈자 급증의 원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시기별로 등락이 있지만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2년 5월(2859만7808명) 이후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불과 2년5개월만에 180만명 넘게 감소했다.
청약통장 감소로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 운용평균잔액도 크게 줄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2분기 주택기금 여유자금 운용평균잔액은 15조8073억원으로, 1분기(17조7199억원) 대비 1조9126억원 줄었다. 때문에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청약통장 월 납입 인정액을 상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잘 사는 사람들이 굳이 청약통장부터 깨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보면, 결국 필요에 의해 가입했지만 그 목적이 사라졌거나 경제적 어려움 및 자금부족의 어려움이 발생했기 때문에 해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서민들도 대출이 막힌 데다 공급부족으로 분양가도 올라 내 집 마련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