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전시에 준하는 종합대개혁 ‘빅 푸시’ 결심을

2025-05-21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은 전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24년 합계 출산율은 0.75명. 일본·이탈리아의 절반 수준이고, 20년 넘게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이 이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그림1〉.

“인구 밀도 높은데 인구 줄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은 무책임하게 들린다. 연금, 건강보험, 군대, 생산성 혁신 등 모든 시스템은 젊은 인구가 있어야 작동한다. 인구 구조가 무너지면 경제는 지속 불가능해진다. 이대로면 2050~60년대엔 마이너스 성장이 유력하다고 한국은행은 경고한다. 수많은 대책에도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왜일까? 어떻게 출산율을 반등시킬 것인가?

돈, 시간, 경쟁 완화, 주거, 이민

인구 관련 모든 축 변화시켜야

아이 한 명이 GDP 40억원 창출

프랑스식 가족 단위 과세 도입을

명문대 향한 경쟁 사다리 낮추고

노동 개혁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지금 필요한 건 ‘빅 푸시(Big Push)’다. 빅 푸시는 개발경제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하나씩 고치는 미세조정이 아니라, 여러 축을 동시에 건드리는 대규모 전략적 개입을 말한다. 빈곤 극복을 위한 빅 푸시의 예를 들면, 2015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실린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있다. 이들은 자산·훈련·건강 등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개선’하는 빅 푸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빈곤 탈출이 가능함을 보였다.

현재의 합계 출산율 0.75가 추세로 계속되면, 현재 51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인구는 2050년엔 4000만명, 2075년엔 3300만명, 2100년엔 2600만명이 된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50%가 넘는다.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빅 푸시’가 필요한 순간이다. 즉 대대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동원으로 저출산의 저주를 끊어낼 결단이 요구된다.

돈: 아이 낳을수록 여유롭게

첫째는 돈 문제다. 아이를 낳으면 가계가 오히려 재정적으로 여유로워져야 한다. 한국의 가족 관련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에 크게 못 미친다. 이미 출산지원금, 아동수당, 부모급여가 있지만, 여기에 프랑스식 세제를 더하자.

프랑스는 소득세를 개인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매긴다. 가구 내 인원수로 나눠 세금을 계산하니 자녀 수가 많을수록 실질 세 부담이 줄어든다〈그림2〉. 예컨대 맞벌이 부부가 연 소득 1억5000만원일 때, 자녀가 없으면 한국과 프랑스 모두 세금은 2500만원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녀가 많을수록 세금이 급감하지만, 한국은 거의 차이가 없다. 게다가 프랑스는 지방세·연금보험료까지 자녀 수에 따라 감면한다.

한국도 가족 단위 과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세금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출산 유인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현금 지원을 보완하고, 자녀 수에 따라 아동수당, 양육비 공제를 강화해야 한다.

아이는 재정 부담이 아니라 수익성 높은 장기 투자다. 대한민국이 향후 매년 2%의 경제성장을 하고, 현재의 세율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20년대 출생 아동 한 명은 전 생애에 걸쳐 현재 가치로 GDP 40억원을 창출하고, 세금 최소 8억원을 내게 된다.

둘째는 시간이다. 아이를 낳으면 커리어가 중단될까 두려워 출산을 포기한다. 특히 한국은 ‘일·가정 양립’이 어렵다. 여전히 육아는 엄마 몫이고, 아빠는 눈치 보며 육아 휴직을 망설인다. 2023년 출산 당해 육아 휴직 사용률은 여성 73.2%, 남성 7.4%이다〈그림3〉. 전체 사용자 중 남성 비율은 25~30%로 지난 몇 년새 늘었지만 여전히 격차는 크다.

시간: 부부 육아휴직은 디폴트로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부부가 동시에 육아 휴직을 쓸 경우 추가 혜택을 주는 6+6 (부부 모두 육아 휴직 6개월 이상 사용 시 휴직급여 인상) 같은 제도는 더 널리 확산돼야 한다. 급여 상한 인상, 중소기업 보조금 강화, 유연근무제 확대 및 노동시간 단축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또 육아휴직은 신청제가 아니라 기본값(default)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직원이 신청하고 승인받아야 한다. 반대로, 기본값을 육아 휴직 사용으로 설정하고, 쓰지 않으려면 별도 절차를 밟게 하자.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가 그의 책 『넛지』에서 역설하듯이 기본값만 바꿔도 참여율은 극적으로 오른다.

경쟁 사회가 저출산 근본 원인

출산은 제도와 돈의 문제를 넘어선다. 저출산은 과잉 경쟁이 낳은 구조적 불안의 산물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는 입시 전쟁에 내던져진다. “하나만 낳아 몰빵하자”는 심리 속에 2024년 사교육비는 29조원을 넘었다.

세종대 김성은·버지니아대 염민철 교수는 한국의 교육열을 ‘지위 외부효과’로 설명한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과잉투자하고, 그 부담이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효과만 사라져도 출산율이 28%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사교육에 교육세를 부과하고, 그 재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쓰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검토해 볼 만한 제안이다.

대입제도 개편, 명문대 서열 완화, 저소득층·지역 인재 확대 등 경쟁의 사다리를 낮추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해법의 목표는 “굳이 명문대 안 나와도 괜찮다”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는 것이다.

일자리와 주거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청년들은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감당 안 되는 주거비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핵심 해법은 노동시장 개혁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중소기업 임금 보전, 실업급여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 실패해도, 꼭 성공하지 않아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주거도 결정적 요인이다. 서울의 출산율은 0.59명, 세종은 1.12명이다. 집값과 삶의 밀도가 출산율을 가른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신혼부부·다자녀 가구 대출 지원 등 출산과 연계된 주거 인센티브는 핵심 정책이어야 한다. 서울시의 ‘미리내 집’은 보증금 없이 공공주택에 입주한 뒤, 일정 기간 후 분양 전환 기회를 주는 제도다. 이러한 주거 모델도 확대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에도 교육·보육·의료 인프라가 골고루 갖추어져야 한다. 서울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바뀌고, 아이 낳고 키울 만한 동네가 많아져야 한다.

이민: 선택 아니라 생존 전략

내국인의 출산만으로 인구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고숙련 이민자부터 전략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은 이미 길을 바꿨다. 2019년부터 일본은 ‘특정기능 비자’를 통해 건설, 간병, 농업, 숙박 등 인력 부족 산업에 외국인 유입을 대폭 확대했다. 일정 수준의 기술과 언어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5년 이상 장기 체류와 영주 정착의 길을 열었다. 보수적이던 일본도 이제 이민 없이는 국가 유지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도 영주권 간소화, 세제 감면, 정주 인프라(국제학교, 영어 공용화 등)를 갖춘 이민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돌봄·요양·생산직 등 중간기술 인력 유입도 단계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민은 사회적 갈등을 동반할 수 있지만, 그보다 인구 붕괴의 위기가 더 크다.

가치관과 문화도 함께 가야

출산은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 내 유대인의 출산율을 보면, 정통파는 평균 3.3명이지만, 비정통파는 1.4명에 불과하다. 같은 사회에서도 문화·공동체·삶의 의미가 출산율을 좌우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처럼, 가족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문화적 메시지가 의외의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모든 축을 동시에 도전하는 빅 푸시, 즉 전시에 준하는 종합 대개혁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이 문제를 국정과제 최우선으로 삼고, 임기 초반부터 과감한 결단과 정치적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선조들의 피땀으로 어렵게 세운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인재연구원장, 연세대 의대·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References

· Kim, Seongeun, Michele Tertilt, and Minchul Yum. "Status externalities in education and low birth rates in Korea." American Economic Review 114, no. 6 (2024): 1576-1611.

· Banerjee, Abhijit, Esther Duflo, Nathanael Goldberg, Dean Karlan, Robert Osei, William Parienté, Jeremy Shapiro, Bram Thuysbaert, and Christopher Udry. "A multifaceted program causes lasting progress for the very poor: Evidence from six countries." Science 348, no. 6236 (2015): 1260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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