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TRQ·할당관세] 양파·마늘 등 민감품목에도 마구잡이 적용…농가만 잡는다

2025-01-09

2022년을 기점으로 농가에 ‘저율관세할당(TRQ) 주의보’가 발효됐다. 양파·마늘 등 민감 품목의 TRQ 물량이 고무줄처럼 늘어났기 때문이다. TRQ는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이 정한 63개 품목에 대해 일정 물량만큼 저율 관세를 적용하는 제도다.

WTO 출범 당시인 도입 초기의 취지는 농가 보호에 방점이 있었다. 수입 농산물에 따른 국내 농업 피해를 예상해 TRQ 물량을 사전에 규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고율 관세를 매겨 관리하는 식이었다. 국내 자급도가 높은 품목은 주요 출하기를 피해 입찰해야 한다는 규정이 이를 방증한다.

WTO 출범 30년이 흐른 지금, TRQ는 국내 생산이 활발한 이른바 ‘민감 품목’ 수입에 마구잡이로 동원되고 있다. 양파 TRQ 기본물량은 2만645t이지만, 2023년에는 9만t으로 340% 증량했다. 양파는 원칙적으로 135% 관세를 적용받지만, TRQ가 적용되면 50%의 저율 관세가 부과된다. WTO에서 정한 물량보다 많이 수입하려면 더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하지만, 기획재정부령으로 물품·물량 등을 추가 배정할 수 있다.

‘할당관세’도 TRQ처럼 농민을 위협하는 제도가 됐다. 할당관세는 2010년 전까지 주로 원료곡, 요소, 농약 원제 등에 적용해 농업 경영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활용됐다. 하지만 2010년 촉발된 ‘금(金)배추’ 논란으로 농민의 경계 대상이 됐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할당관세를 활용해 낮은 관세로 배추를 수입했다.

할당관세를 시행하는 농식품 품목은 2022년 35개에서 2024년 상반기 기준 67개까지 늘어났다. 2024년에는 최근 10년간 할당관세가 적용되지 않았던 양배추·당근·배추·포도 등이 대상 품목에 포함됐다.

‘TRQ’ ‘할당관세’를 동시에 부과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이같은 품목은 2021년 10개에서 지난해 15개로 증가했다.

본지가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전북 완주·진안·무주)과 임미애 의원(비례대표)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동시 적용은 양파·과일류 등 민감 품목에도 단행됐다.

이중 처분은 최소한의 보호망인 ‘저율 관세’ 마지노선까지 무력화한다. TRQ로 한번 낮춘 저율의 관세를 할당관세로 또 한번 깎는 식이다. 일례로 지난해 감귤류에는 TRQ와 할당관세가 모두 도입됐다. 144%가 적용되던 감귤류의 관세는 TRQ를 적용해 50%로, 여기서 할당관세로 10%까지 낮아졌다. 지난해 10월 기준 이런 저율 관세가 적용된 물량은 2097t에 달한다.

농산물 저율 관세 수입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기재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할당관세 부과 실적 및 결과 보고’에 따르면 2023년 닭고기 할당관세에는 991억7000만원, 돼지고기에는 347억1000만원의 관세 지원이 이뤄졌다. 막대한 세수 펑크에 비해 효과는 크지 않았다. 닭고기는 2023년 전체 지원액 가운데 9.2%, 돼지고기는 3.2%를 차지하는 지원 ‘상위 품목’에 속했지만, 소비자물가지수 변동효과는 0.18%, 0.68% 감소에 그쳤다.

이나마의 효과도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론 물가안정을 이끌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3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시장 개방도와 국내 과일 가격의 관계는 ‘유(U) 자형’을 나타냈다. 시장 개방 초기에는 과일 가격이 낮아지다가 이후 개방도가 높아지면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관세 혜택이 소비자가 아닌 수입업체로 흐른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 의원은 농식품부 ‘TRQ·할당관세 수입업체별 배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할당관세로 쇠고기를 들여온 업체 가운데 주요 식품 대기업 계열사들이 189억2100만원의 관세 지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들 업체를 2022년 7월 쇠고기 할당관세 수입업체로 배정했다. 임 의원은 수입 쇠고기의 평균 수입단가는 그해 7월 1㎏당 9달러에서 12월 8.4달러로 내려갔지만, 미국산 냉동갈비의 국내 소비자가격은 7월 100g당 4277원에서 11월 4232원으로, 호주산은 4447원에서 12월 4474원으로 가격안정 효과가 없다고 꼬집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글로벌 농산물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원인으로 짚는다. 주요 수출국들은 초기에는 낮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거래하지만, 수입국의 수입 의존도가 심화하면 가격을 올린다는 분석이다.

저율관세할당(TRQ)·할당관세

저율관세할당(TRQ)은 ‘국제법’에 근거해 WTO·FTA 협정에서 정한 특정 품목 중 일정 물량에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이중관세 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운용하는 TRQ는 WTO TRQ와 FTA TRQ로 구분된다. WTO TRQ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FTA TRQ는 개별 FTA 협정에서 정한 품목과 수량을 운영한다.

할당관세는 ‘관세법’에 근거해 일정 기간 일정량의 수입품에 대해 일시적으로 기본 관세율에 더하거나 낮춰 부과하는 관세다. 기본 세율의 40% 범위 내에서 가감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김소진 기자 sjkim@nongmin.com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