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노인 빈곤과 부양비 폭탄을 동시에 줄이려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2024년 12월 23일. 이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을 기준으로, 7% 이상은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을 초고령 사회라고 표현한다.
저출산·초고령화는 자본주의적 변동 속도와 관련이 깊다. 인구 구조는 3단계 변화를 겪는다. 농업경제에 기반한 전근대 공동체는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는 다산(多産)-다사(多死)형 인구구조다(1단계). 위생과 의학이 함께 발달하는 산업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다산(多産)-소사(小死)형 인구구조가 된다(2단계). 이때 ‘베이비 부머’ 세대가 탄생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자들, 한국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 세대가 해당한다. 지식기반경제가 되면 고학력화 현상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증가해 소산(小産)-소사(小死)형 인구구조가 된다(3단계).
올해 노년부양비는 2000년의 2.9배, 2040년엔 5.9배 치솟아
고령화 속도 압도적 세계 1위…부양비 폭탄은 이제 겨우 시작
고령층에 연공급 폐지와 연동된 정년연장과 최저임금 감액을
종교 관련 소득 등 지하경제 양성화 재추진해 세원 확보해야
1단계에서 3단계의 변화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저출산 현상과 고학력화 현상이 진행된다. 유럽은 인구구조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졌고, 한국은 급진적으로 이뤄졌다. 한국과 함께 일본, 대만,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은 동아시아 발전국가로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 산업화, 압축 도시화, 압축 성장을 겪었다. 이 나라들의 저출산·초고령화 속도가 유난히 가파른 이유다.
‘한국형’ 초고령화가 특별한 이유
〈표 1〉은 유럽 대륙국가, 영미권 국가, 동아시아 발전국가 등 국가 유형별 초고령화 속도를 비교했다. 유럽 대륙 국가들의 초고령화 속도가 가장 느리고, 동아시아 발전국가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속도가 놀랍다. 프랑스는 155년 걸렸고, 스웨덴은 124년이 걸렸다. 한국은 불과 24년밖에 안 걸렸다. 한국은 저출산만 세계 1위가 아니다. 초고령화 속도 역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한국처럼 초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첫째, 노동공급 부족이다. 초고령화는 15~64세 생산연령인구의 상대적 감소를 의미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은 37.3%에 달한다(통계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6.3%보다 2.3배 높다. 한국 고령층 고용률이 세계 1위가 된 이유는 초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빨랐지만, 연금제도는 뒤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둘째, 부양비 폭탄이다. 고령자 비중이 7%에서 20%가 되면 부양비가 약 3배 증가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회복지비의 약 2/3는 노인 관련 예산이다. 가장 큰 덩어리는 연금과 건강보험이다. 즉, 고령층의 빠른 증가는 사회복지비(부양비)의 빠른 증가를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은 OECD에서 사회복지비 지출 증가율이 가장 가파른 나라다.
〈표 2〉는 한국의 노년 부양비 증가 속도가 얼마나 가파른지 보여준다. 노년 부양비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담당하는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다. 예를 들어, 생산연령인구가 100명이고, 65세 이상 고령층이 29명인 경우, 노년부양비는 29.0이 된다. 2025년이 이에 근접한다. 2000년 노년부양비를 1.0배로 간주할 경우, 2025년은 2.9배, 2040년은 5.9배, 2060년에는 8.9배가 된다. 어마어마한 증가 속도다. 평균연령을 보면, 2000년에는 33.1세였다. 2025년에는 45.5세다. 2050년이 되면 55.2세가 된다. 초고령화 대한민국이 겪게 되는 부양비 폭탄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저성장 기조는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셋째, 노인 빈곤이다. 초고령화에 돌입한 모든 나라가 노인빈곤 문제를 겪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 고령층의 노인빈곤율은 39.7%(가처분소득 기준)다. OECD 국가들은 14% 수준으로 한국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넷째, 일자리와 부양비 분담을 둘러싸고 세대 갈등이 증폭된다. 여기에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이 맞물릴 경우, 세대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엄마 노동자 고용률 더 높여야
초고령화 시대 해법의 방향성은 더 많은 사람이 일하도록 도와주고, 추가 노동력에 세수를 확보하고, 더 빈곤한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 4가지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노동공급 부족이다. 노동공급 부족은 여성 노동력과 고령층(65세 이상) 노동력을 활용하면 상당 부분 보충이 가능하다. 한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의하면, ‘15세 미만 자녀를 둔’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56.2%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인 3050클럽의 평균은 68.2%다. 이들 나라보다 12%포인트가 더 낮다. 더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일본과 비교하면 무려 18.6포인트가 더 낮다.
2024년 11월 기준, 한국의 남성 취업자는 1600만명(72.8%), 여성 취업자는 약 1300만명(56.6%)이다. 여성 고용률을 남성만큼 끌어올릴 경우 300만명의 추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엄마 노동자의 고용률 제고에 힘쓸 필요가 있다.
고령층 노동력은 ‘연공급 폐지와 연동된’ 정년연장이 필요하다. 연공급 폐지 없이 정년연장만 이뤄지면, 기업 입장에서 비용 상승으로 청년고용을 기피하게 된다는 실증 연구들이 많다. 70세 이상 고령층에 한해 ‘최저임금 감액’ 제도를 20~30% 수준 적용할 경우, 저임금 분야 고령층의 고용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경우 노인빈곤율이 줄어들 것이다.
둘째, 부양비 폭탄이다. 고령층과 여성의 고용이 확대되면 그 자체로 세수 확대 효과가 있다. 다른 한 축으로는 박근혜 정부 때 했던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을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적으로 지하경제 개념은 국내총생산(GDP)에 집계되지 않는 경제활동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에 해당한다. 가장 큰 덩어리는 종교 관련 소득에 대해 세금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최대 덩어리가 ‘종교 관련 소득’이라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월소득 365만원 노인 부부도 기초연금
셋째, 노인 빈곤 문제다. 핵심은 연금제도 개편이다. 부양비 폭탄과도 직결되는 이슈다. 특히 기초연금 문제가 심각하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된다. 2008년 도입 이후 최근까지는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보완해주는 순기능이 컸다. 지금은 부작용이 더 커졌다. 2025년 기준, 노인 부부 가구의 소득이 월 364만 8000원인 경우에도 기초연금 30만원이 지급된다. 다른 일체의 재산이 없는 경우, 이론적으로만 보면 노인부부 소득 월 745만원인 경우도 기초연금 30만원이 지급된다. 현행 기초연금은 빈곤 노인의 소득보장 취지를 넘어 표를 얻기 위한 ‘복지 표퓰리즘’의 상징이 됐다. 기초연금 대상자는 절반으로 줄이되, 금액은 더 두텁게 개편하면 노인빈곤율도 줄이고, 부양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단,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연동돼 작동한다. 기초연금은 재정을 활용하고,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활용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평균 수급액은 약 55만원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올리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성숙할수록 기초연금은 보완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
넷째, 세대갈등 문제다. 여성과 고령층의 고용률을 올리고, 이들에 대한 세수가 확대되고, 복지제도를 합리적으로 재편한다면, 청년층과 장년층의 부양비 부담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세대갈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189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유럽의 복지국가 역사는 3단계로 변천했다. ①복지국가 준비기→②복지국가 확대기→③복지국가 재편기를 겪었다. 복지국가 준비기의 핵심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지면 모든 나라에서 복지 혜택은 확대됐다. 복지국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초고령화, 제조업 경쟁력 약화, 연금제도의 비효율성, 높은 세금부담 압박, 세대갈등의 문제가 부상했다. 한국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복지가 급속하게 확대됐다.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복지확대’ 정부였다. 그동안은 순기능이 훨씬 더 컸다.
그러나, 2025년 선정기준액으로 노인 단독 가구는 월 소득 228만원, 2인 노인 부부는 월 소득 364만8000원인 경우에도 기초연금 30만원이 지급된다. 노인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무조건’ 하위 70%로 자르기 때문이다. ‘복지를 위한’ 기초연금이 아니라, ‘예산 사용을 위한’ 기초연금으로 전락했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해서 우리는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여성과 고령층의 고용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세원을 확대하고, 빈곤층은 더 과감하게 도와주되, 청년·장년층의 부양비 부담은 줄여야 한다. 경제성장과 복지의 병행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성장·초고령화의 파도를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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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