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호 고쿠시칸대 교수 “재일동포, 한류로 위상 높아져… 한·일 우호관계 이어나갈 자산” [2025 신년특집-광복 80년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2025-01-05

재일 동포 ‘디아스포라’를 말하다

‘日체류 40년’ 신경호 고쿠시칸대 교수

日서 참정권 없는 ‘부평초’ 같은 삶

한·일 중 어디서 뼈 묻을까 늘 고민

‘3·1운동 단초’ 2·8독립선언 기려

한국 위상 커지며 차별 줄었지만

재일동포 후손 상당수 귀화 선택

정체성 일깨울 문화교육 늘어야

“40년간 일본에 살고 있지만 어디서 뼈를 묻을 것인가는 끊임없는 고민거리입니다. 후손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울 수 있는 문화교육의 장이 풍부해졌으면 합니다.” 신경호 고쿠시칸대 교수가 일본에 건너온 것은 1983년이다. 영주권을 얻어 일본에서 생활한 지 40년이 넘었다.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 중에서 ‘뉴커머’(newcomer,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에 건너가 정착한 대한민국 국적자)인 그는 자신의 삶을 물 위에 떠 있는 풀인 ‘부평초’에 빗대기도 했다. 수많은 자이니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는 고민의 지점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자신의 삶 속에 한국, 일본을 동시에 품은 자이니치는 한·일 우호 관계를 정착, 발전시켜나갈 중요한 자산이란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신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 근대사뿐만 아니라 자이니치 역사 속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2·8독립선언에서부터 시작했다. 1919년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선언은 3·1운동의 단초가 됐다. 신 교수는 ‘2·8 한·일미래회’ 회장을 맡았다.

-2·8독립선언에 대한 평가는.

“국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유학생들이 가족의 흥망성쇠를 걸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3·1운동의 기폭제였을 뿐만 아니라 동남아, 인도, 중국 등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교수, 사업가, 주재원 등이 참여해 2·8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 정신에 공감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문호를 열어두고 있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는 어떤 존재였나.

“19세기 말 생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해 도쿄, 오사카 등에 정착했다. 법적 지위가 아주 낮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차별의 대상이 됐다. 해방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그저 ‘거류자’ 신분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법적 지위 개선을 위한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1991년 특별영주자 자격 대상이 되면서 국민건강보험, 무상 교육을 받게 됐다.”

-일본으로 건너온 1980년대 초반은 어땠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던 때라 자이니치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았다. 자이니치 1세대들이 나 같은 유학생들을 크게 격려한 것도 우리 스스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자이니치의 위상은 자이니치 스스로의 노력으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자이니치를 향한 차별, 경멸의 정도가 심했다.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이니치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신 교수는 냉정하게 볼 때 지금도 차별이 존재한다며 대표적인 것으로 외국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점을 들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며 그의 목소리는 한껏 높아졌다.

“나의 경우를 놓고 보면 일본에 온 지 40년이 넘었고 영주자격을 받은 게 25년 전이다. 교수, 학교법인장으로서 일본 사회에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웬만한 일본인들보다 세금도 더 낸다. 하지만 참정권이 없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이 선진국이고 ‘우쓰쿠시이 니혼’(아름다운 일본)이라며 문화국임을 자부하지만 자이니치를 겨냥한 헤이트 스피치가 여전하다.”

-참정권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부평초 같은 삶의 상징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정신세계에는 상실감이 있다.”

-하지만 자이니치의 위상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물론이다. 많은 자이니치가 성실한 삶을 살았고, 그중엔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8월 (자이니치가 설립한)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은 일본인마저도 감동한 큰 기쁨이었다.”

-자이니치 후손들의 한민족 정체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약해진 게 사실이다. 자이니치들이 예전만큼 뭉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후손들의 상당수는 귀화해 일본인이 됐다. 스스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교육의 장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쿄=글·사진 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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