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달구는 ‘예술의 정치 세탁’ 논란

2025-01-23

솔직히 베를린 필하모닉도 이렇게 연주하지는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2008년 내한에서 던진 충격이었다. 이들의 주특기 연주곡인 번스타인의 ‘맘보’를 듣고 청중은 어안이 벙벙했다. 베를린필을 비롯한 많은 악단이 연주했던 곡이지만, 이들처럼 연주자들이 “맘보!”를 목청껏 외치고, 악기를 하늘로 치켜들어 연주하며 이리저리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란 듯이 춤을 추지는 않으니 말이다. 에너지와 기쁨이 터져 나오는 무대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제 이름에서 ‘청소년’을 떼어냈다. 단원 중에 더 이상 청소년이 없기 때문이다.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브 베네수엘라(SBSOV)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맘보!”의 끝내주는 함성을 들을 때는 예상할 수 없었던 무겁고 어두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각광받는 지휘자 두다멜 투어

“독재자가 키운 악단” 잇단 비난

예술의 침묵 두고 해묵은 논란

이들은 지금 유럽에서 공연 중이다. 이달 11일 파리에서 시작해 베를린 등을 거쳐 25일 마드리드에서 끝나는 10회 공연의 화려한 일정이다. SBSOV를 만든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 5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다. 엘 시스테마는 사회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대대적인 악기 교육을 무상 제공한 베네수엘라의 자랑스러운 사업이었다. 지금도 참가자가 100만 명 이상, 오케스트라는 1700여 개가 운영되고 있고 많은 나라가 이 이름을 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LA필의 현재 상임 지휘자이며 2026년부터 뉴욕필을 맡게 되는 수퍼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44)이 여기에서 배출됐다.

오랜만에 친정 오케스트라에 돌아온 두다멜이 함께 하고 있는 투어의 축제 분위기에 한 피아니스트가 찬물을 끼얹었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55)다. 몬테로는 “이 오케스트라는 부정한 정권의 예술 세탁 수단”이라고 주장했고, 유럽의 공연장과 공연 주최사에 오케스트라와 협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마침 이달 10일 니콜라스 마두로가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좌파 성향의 이웃 나라도 마두로를 인정하지 않는 부정 선거, 야당 인사와 언론인에 대한 체포로 나라는 혼란스럽다. 엘 시스테마는 재정의 3분의 2를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으며 대통령실이 운영한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부정을 이 오케스트라가 왜곡하고 포장한다는 지적이다.

어려운 문제다. 한 포퓰리즘 독재 정치인의 횡포가 오케스트라의 차이콥스키·말러 교향곡 연주와 관련이 있을까? 지휘자 두다멜이 베네수엘라 정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이 일과 관련해 사과를 해야 할까? 예술가들이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반드시 발언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가? 실제로 이들을 초청한 유럽의 분위기도 엇갈린다. 더 타임스는 공연에 대해 매섭게 질책했고, 가디언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고개를 높이 들고 연주하라”고 응원했다.

여기에서 기시감이 든다. 2017년 이후 예술계에 몰아닥친 미투 사태 때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예술가들에 대한 음악계의 퇴출 때도 비슷한 난감함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예술은 예술로, 뛰어난 음악가들 또한 그 자체로 향유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엇보다 자신이 하지도 않는 일로 비난받기에는 그들의 예술성이 너무 뛰어나다는 찜찜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예술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홀로 숭배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준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푸틴 정부와 확실한 선을 긋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 러시아 예술가들은 무대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경향은 지금도 뚜렷하다. 두다멜이 지난해 여름 뉴욕에서 베네수엘라 국립 어린이 교향악단을 지휘했을 때 공연장 앞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앞으로도 청중과 관객은 예술가들에게 입장을 요구하고 질문하며 질책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주장은 피아니스트 몬테로의 결론이다. 몬테로는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계속해서 주장해 왔으면서 음악이 정치적인 선전을 한다는 사실을 간편하게 무시할 수는 없다.” 발언의 의무가 침묵의 권리만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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