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로마의 어느 뒷골목에서 난장의 밤이 지나고 있다. 연극이 진행되는 와중에 무대 밑에서는 섹스가 이뤄지고 온갖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개중엔 미켈란젤로 메리시(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도 있다.
그는 시끌벅적한 무리 속에서 매춘부 안나를 발견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그림을 그린다. 안나는 이윽고 의자에서 졸기 시작한다. 메리시는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 그림에 담는다. 카라바조의 그림 '참회하는 막달레나'는 이렇게 탄생한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카라바조로 알려진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1571∼1610)의 삶을 그렸다.
메리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등으로 알려진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3대 화가로 꼽히는 거장이다. 그는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에 영향을 미친 바로크 미술의 개척자로 거론된다.
영화는 카라바조의 삶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엿보는 주요 매개체는 그가 그리는 그림이다. "그리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그의 대사처럼, 카라바조의 삶과 그림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그림을 잘 아는 관객이라면, 명화에 담긴 뒷이야기를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낄 것 같다.
이를 위해 영화가 택한 서술 방식도 눈에 띈다. 카라바조가 살인 혐의로 도망 다니는 신세라는 점이 오프닝에서 제시되고 관객은 교황의 지시를 받은 '그림자'(루이 가렐)를 따라 카라바조의 행적을 좇는다. 추적극과 같은 형식으로 관객의 관심을 붙들어두는 셈이다. '그림자'가 지향하는 바가 카라바조와 대비되는 점도 카라바조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카라바조가 창시한 기법 테네브리즘(명암을 극명하게 대비해 입체감을 더하는 미술 기법)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화면에도 담겨 있다. 연출을 맡은 미켈레 플라치도 감독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닮은 듯한 화면으로 당시 이탈리아를 재현했다. 더러운 뒷골목 등의 로케이션과 의상도 당시 모습을 그리는 데 한몫을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들이 이 영화에 함께했다. 카라바조 역으로 '존 윅 - 리로드'(2017)로 알려진 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가, '그림자' 역으로 '몽상가들'(2005)과 '작은 아씨들'(2020)의 루이 가렐이 각각 출연했다. 세계적인 명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카라바조를 후원하는 '콜론나 후작 부인'으로 나온다.
22일 개봉. 120분.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