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불청객, 사람 : 안전하게 해찰할 수 있는 도시

거리의 불청객, 사람 : 안전하게 해찰할 수 있는 도시는 가능할까?

Humans, Strangers in Their Own Street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55), 2025.5.7,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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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사고, 도시, 자동차, 이동, 탐험

1.머리말

2.보행자가 ‘방해물’이 된 시대 : <사고는 없다>

3.모험과 약자가 사라진 거리 : <불안세대>

4.우리의 안전은 연결되어 있다 :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긴 연휴를 즐겁게 잘 보내셨나요? 징검다리 휴일이 이어져서 거의 일주일 가깝게 쉬신 분들도 계실텐데요. 저는 레터를 써야 하기 때문에 별로 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이어 또 편지를 통해 연구자님을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

최근 저는 우연히 한 교통 전문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량 블랙박스를 통해 갖가지 상황에서 아찔한 사고 장면을 보여주고 거기에 대해 해설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저는 거리 위에서 오토바이, 자동차와 관련해 상상 이상으로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숨을 삼키며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영상 속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보행자나 자전거 등은 게임 속 ‘방해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교통전문 변호사가 직접 블랙박스를 보며 기묘한 사람, 차량의 이야기('기상천외한 민폐' '악인')에 주목하는 것이 주된 콘텐츠입니다. 분명 복잡한 도시에서 살기 위해선 적절한 안전 수칙과 공동체의 규칙을 지켜야합니다만, 오늘날 도시에서 '할 수 있는 행동 범위'의 제약 및 '그 규칙을 어겼을 경우 오는 리스크'가 과거에 비해 극단적으로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왼쪽) 작자미상, <태평성시도>. 조선시대 18세기 거리의 풍경을 그린 지도입니다. 왼쪽을 보면 장대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원숭이들을 아이부터 어른까지 둘러앉아 바라보고 있고, 오른쪽에는 말과 마차탄 사람과 동물들이 떼지어 걸어가고 있는 풍경이 보입니다. 먹거리를 파는 노점도 보이네요(링크)./ JTBC유튜브,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저는 계속 그 영상들을 멍하니 보다 문득 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커다랗고 맹렬하게 빨리 달리는 기계와 보행자가 섞여 일상적으로 함께 지내야 하는 시대가 있었을까?1)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요. 물론 차에 탄 것도 사람이지만, 보행자 입장에서는 - 특히 도심에서는 -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위협적인 쇳덩이들을 신경쓰면서 걸어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동선이나 취하는 행동도 세밀하고 엄격하게 결정되고요. 어쩌면 먼 미래의 사람들은 오늘날을 ‘자동차의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

사실 평소 제가 교통 문제에 각별히 관심이 높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많은 분들처럼 그저 일상적으로 차를 타거나, 걷고 또 오토바이를 피하며 돌아다녔죠. 정신을 바짝 차리고요.

하지만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자동차 그 자체보다도, 구체적으로 자동차와 함께 하는 시대가 거리를 어떻게 바꾸었고, 우리가 세상을 탐색하고 어슬렁대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거리에서의 안전 문제를 단순히 ‘교통’ 의 문제로만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이런 물음표들은 - ‘자동차와 함께 사는 도시에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고는 없다>(제시 싱어), <불안세대>(조너선 하이트),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박정훈) 등을 지팡이 삼아 자동차와 사고, 그리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통사고 프로그램을 보다가 다소 뜬금없는 이 질문을 떠올리게 된 건, 아마 최근에 19세기 산책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책(링크)을 읽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책에선 과거 지식인 뿐 아니라, 많은 하층민 노동자들 역시 시끄러운 집에서 벗어나 '고독'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산책이 아주 좋은 취미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 거주자라면 이런 종류의 느긋한 모험같은 산책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정말로 위험천만입니다!) 그러고보면 과거 레터에서 오늘날 "과연 도시는 산책하기 좋은 장소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려 본 적도 있었네요(링크) 당시에는 자동차나 위험성 차원에 주목해보진 않았지만요.

【2.보행자가 ‘방해물’이 된 시대 : <사고는 없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중세시대에는 마차보다 사람이 걷는 게 빨랐다는 이야기를 읽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세사람이 초스피드라서가 아니라, 당시 길이 울퉁불퉁하고 거리도 잡다하게 복작거렸기에 마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가 빨라서 뿐 아니라 모든 곳에 널찍한 도로를 깔고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이 자동차가 쌩쌩 다닐 수 있도록 피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요는, 도시가 사람(보행자) 위주에서 자동차 위주가 된 것입니다.

*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의 <사고는 없다>는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대규모 원전 사고 등 다양한 ‘사고’들에 대해 쓴 책인데요.

영어판 책의 부제는 ‘부상과 재난의 치명적 증가 -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대가를 치르는가’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사고’는 대체로 권력의 문제이며, 오늘날 대부분의 ‘사고’는 안전보다 이윤 등 다른 가치를 우선시하기로 결정한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사고는 없다> 책 표지(왼쪽) <사고는 없다>를 쓴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 그는 '사고'라는 단어가, 특정 계층 등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를 지우고 모든 걸 '보행자 혹은 운전자' 등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런 방식으론 상황을 더 낫게 만들수 없다고도요. / 위즈덤하우스, Active Towns(영상)

‘사고’라는 단어는 손상이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준다 [...]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초대 국장을 지낸 의사 윌리엄 해던은 사고가 무작위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는 개념은 “합리적인 인간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민속 전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사고라고 부르는 것이 미신처럼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 그의 사무실에는 잘못된 단어를 말하면 벌금을 내는 통이 있었는데, 차량 충돌을 “사고”라고 말하면 10센트를 넣어야 했다 [...] (하지만) 다른 모든 곳에서는 여전히 사고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제시 싱어, <사고는 없다>(이하 동일)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제가 주목하게 된 부분은, 도시의 거리가 보행자 중심에서 자동차 중심으로 옮겨 간 시기(1920년대)에 대한 대목이었는데요. 오늘날과 다른 방식으로 도로를 상상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낌표가 떠오른 두 가지 포인트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차량살인’에서 ‘교통사고’로 : 보행자 중심 → 자동차 중심의 도시

#ㄴ.‘썩은 사과’ 전략 : 이상한 운전자, 보행자 개인이 문제다?

*

#ㄱ.‘차량살인’에서 ‘교통사고’로 =

<교통사고와 싸우기: 미국 도시에서 자동차 시대의 서막>을 쓴 피터 노턴에 따르면, 자동차가 거리의 주인이 되기 시작한 1920년대 미국에서는 차량이 사람을 치면 ‘교통사고’라는 말 대신 ‘차량 살인motor murder/killing’이라는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시점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단어입니다만. 1920년대의 보행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거리를 다니는데 분명 그 이전에는 없었던 형태의 보행자 사고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 (1920년대에는) 매년 아동 교통사고 사망 지도를 발행하기 시작했을 만큼 차량 살인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도시 살인 지도’라고 불렀다 […] 자동차가 등장하고 이어서 교통신호와 교통 법규가 도입되자 보행자는 도로에서 2차적인 존재로 밀려나 지시를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죽기까지 하고 있었다. 갑자기 2차적인 존재로 강등되고 전례 없는 위험에까지 처하게 된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살인이라고 소리 높여 비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미국 도시가 물리적으로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게 재구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도시의 거리들이 자동차가 속할 수 있는 장소로서 사회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했다.”

- 피터 노턴, <거리의 라이벌: 무단횡단과 자동차 시대 거리의 발명>(링크)

거리의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의 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고요.

1924년 뉴욕타임스에는 ‘자동차 살인으로 인해 전국이 들끓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요. 기사의 일부 대목만 보아도,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깜짝 놀라고 화가 났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공포는 평화의 공포보다 덜 끔찍해 보인다. 자동차는 기관총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기계로 여겨진다 [...] 길거리의 사람들은 참호 속의 사람보다 덜 안전해 보인다..."

뉴욕타임스의 1924년 기사 ("자동차 살인으로 인해 전국이 들끓다!Nation roused against motor killings"·링크) (왼쪽) "스피드 악마 - 당장 멈추고, 우리의 미래 세대를 생각하라!"라고 쓰여있고, 자동차 위의 저승사자가 아이들을 위협하는 모습이 그려진 1920년대 미국 포스터 / 뉴욕타임스

이런 도로 위의 위험은 꼭 보행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는데요.

저자에 따르면, 사고 시 운전자를 충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은 거의 항상, 기업의 자발적인 연구를 통해서보다도 정부 당국의 규제를 통해 강제로 이루어져 왔다고 합니다. 심지어 휴 디헤이븐*이라는 개인이 직접 충격시 운전대가 움푹 들어가게 해 운전자를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1953년엔 기업들을 대상으로 시연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기업들이 이를 차량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이로부터 14년 후인 1967년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제때 도입이 되었다면 그 기간 동안 약 8만명의 운전자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고요.

*휴 디헤이븐(Hugh dehaven·링크) = 1917년 비행기 사고로 150미터를 추락했는데 안전벨트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파일럿,엔지니어. 그는 이후 평생 안전을 연구해 "충돌사고 생존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생전 "우리는 인간의 머리를 보호하는 법보다도 운송 중인 계란을 보호하는 법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하며, 실수 및 사고는 발생할 수 있더라도 피해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일이며 그건 반드시 연구, 투자가 필요한 일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보행자와 탑승자의 안전 기준을 높이는 것은 대체로 기업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ㄴ.‘썩은 사과’ 전략 =

이처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자동차 업계, 규제당국은 과연 안전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조성해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당시 자동차 업계는 애써 교통사고의 문제를, 보행자에게 적대적인 도시 계획 및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민폐같은 얼간이 운전자, 칠칠치 못하고 위험을 자초하는 보행자’의 문제로 틀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무단횡단’(jaywalker)이라는 멸시 섞인 단어도 이때부터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고요.

이는 당대 사람들에겐 마치 ‘무단걷기’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이전에는 사람이 자유롭게 다니는 곳이 그냥 길이었기 때문에, ‘무단횡단’이라는 말 자체가 통용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 및 그와 금전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세력은 교통사고의 원인을 (차량이 아니라) 인적 과실로 돌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 사람들의 분노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걷거나 운전하는 방식을 향하도록 했다. 이들은 몇몇 썩은 사과가 문제라고 말하는 캠페인을 조직적으로 전개해 막강한 힘을 가진 자동차가 보행자가 밀집한 도시 거리에서 일으킨 충격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정신 나간 운전자와 제대로 걷지 않는 보행자의 이야기로 바꿔냈다.

[...] 사고에 관한 논쟁에서 인적 과실을 내세우는 쪽에 매우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는 탓할 허수아비를 세우는 것이다. <교통사고와 싸우기Fighting Traffic>(링크)에서 노턴은 ‘무단횡단자’라는 단어의 발명을 이런 화법상의 전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 1920년대 이전에 무단횡단자라는 말은 그리 흔히 사용되지는 않는 모욕적인 말이었고, […] ‘무단운전자’와 짝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

나아가 심각한 문제는, 이런 변화가 단지 사소한 풍습의 변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

전례 없던 위협을 통해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 반경, 다양성을 극단적으로 축소시켰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고, 성인에 비해 신체 조건 등에서 취약한 아동들이 많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당국, 자동차 업계는 이를 ‘무관심한 엄마’ ‘제멋대로 아무데서나 튀어나오는 아동’의 탓으로 한사코 돌려왔죠.

디트로이트 등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아동 자동차 사고’ 지도(링크)를 그리기도 했던 미국 지리학자 윌리엄 번지(1928~2013)는 과거 도시에서의 ‘사고’를 부주의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세태에 분노하는 글을 썼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아이들은 위험한 길을 건너야만 한다. 학교 앞에서 많게는 대여섯건의 ‘사고’가 매년 시계처럼 반복된다.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그것을 왜 ‘사고’라고 부르는가? 어떤 골목을 가리키면서 ‘내년에 여기서 다섯명의 아이가 차에 치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면, 그 길에서 사망과 손상을 일으키는 것은 거리의 지리학이고 말과 마차의 시절부터 새겨진 도심 슬럼의 자국이지 아이를 방치한 엄마들이 아니다.(-Willian Bunge, ,(1988) 중)’

물론 그 이후로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지며, 스쿨존 속도 제한 등의 ‘보호’ 정책이 어느정도는 생겨났지만 -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목숨을 잃을만큼 치명적인 위험이 도로에 가득해졌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었고요. 과거에 비해 아이들, 노약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예전처럼 바깥을 지유롭게 탐색하거나 돌아다니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위험성은 불과 반세기 정도만에 도시에서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의 삶을 크게 뒤흔들어놓았죠.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모험과 약자가 사라진 거리 : <불안세대>】

우리는 과연 위험천만한 곳에서 맘놓고 어슬렁대거나 놀 수 있을까요?

과거 일본의 저널리스트·작가 겐콘 이치호이(1866~1935)는 제대로 못 노는 대도시 슬럼가의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마차, 짐수레 등 위험천만한 탈 것들이 거리에 가득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인데요. 아이들은 맘껏 모험하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모퉁이에서 군것질을 하거나, 앉은 자리에서 이런저런 장난감을 가지고 좀 지루하게 놀 수밖에 없었죠.

“불행히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나가 놀 곳이 변변찮다. 너른 들판은 커녕 나무 타기 할 나무도, 고기잡이 할 냇물이나 개울조차 구경 못한다 […] 마차, 인력거, 짐수레가 지나다니니 달음박질도, 술래잡기도, 까막잡기와 신발 숨기기도 위험천만하다 […] 자연히 거리에서 물러나 분큐텐(*文久店·빈민가의 저가 과자, 장난감 판매점)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채 30몬을 털어서 봇타야키를 사 먹거나 아니면 사방 석 자 땅바닥에서 딱지치기나 하면서 승패를 겨루는 것이 고작이다.”

-겐콘 이치호이, <도쿄의 가장 밑바닥>(1893)

이 대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지나치게 위험한 거리>가 아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위축시키는 가장 심각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약 1세기 후 고스란히 오늘날 도시의 아이들 역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2024)는 “오늘날 스마트폰, SNS가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외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책인데요.

전체적인 책의 핵심 메시지는 “아이들의 발달을 위해선 (스마트폰 대신) 모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신체적인 놀이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제가 오늘 레터에서 이 책을 읽어보려고 가져온 이유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자동차 중심의 위험한 도시 공간을 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세대> 책 표지 (왼쪽) <불안세대> 책에 삽입된 스릴 넘치는(?) 놀이터의 사진. 위험천만해보이지만, 과거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어느정도 다칠 각오를 하면서 스스로 도전하고, 타협하거나 성취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놀이터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놀 수 있었죠. / 웅진지식하우스

오늘날 통상 아이들이 맘껏 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스마트폰 중독, 개인주의, 과도한 교육열 등의 이유를 들곤 하는데요.

그보다도 실은 많은 학자들은 1980~1990년대 이후 아이들이 자유롭게 거리에서 놀지 못하게 된 계기에 대해, 공통적으로 ‘자동차’를 주요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아왔다고 합니다.

과거엔 도시에서도 아이들이 나름 자기 멋대로 뛰어놀고 어슬렁댈 수 있었지만, 일단 도시 거리의 중심이 자동차가 되면서 위험이 늘었기 때문에 탐험하며 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거죠.

아동기의 자율성이 급속하게 상실된 현상의 주요 원인은 대학 입학에 대한 부모의 두려움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부모가 자녀에게 자율성을 덜 부여하기 시작한 이유를 몇 가지 지적했는데, 그중에는 도시가 점점 더 자동차 중심적이고 현대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일어난 도시 설계의 점진적 변화도 있었다 […] 1980년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마도 부모들 사이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자녀에게 위협 대상이라는 두려움이 커진 것이 아닐까 싶다.

-조너선 하이트, <불안세대>

저는 이 대목을 옮겨두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1970~80년대 이전 소설들을 보면 아이들이 제멋대로 이것저것 줍고 다니거나 도시에서도 거리에서 술래잡기를 노는 등의 장면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아이들을 거리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대신 도시는 점차 ‘무균화된 아파트 단지 내부 ↔ 위험하고 슬럼화된 골목길’의 구도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전한 아파트’에서 키우기 위해 무리해서 집을 구입하고요. 하지만 과연 무균화된 아파트는 아이에게 안전하면서도 다채롭고 모험하기 좋은 곳일까요?2)

‘걷기 좋은 도시’를 고민해온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고개를 젓습니다.

위험하지만 다양성과 모험이 공존하는 저층주거지의 길과 안전하고 걷기 편하지만 많은 것들이 제거된 대단위 아파트 단지 내 환경은 매우 대조적이다 [...]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이들에게 능동적인 경험과 좀 더 현실적인 도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제시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동차 없는 지상에는 우레탄 놀이터와 관상용 조경, 들어갈 수 없는 수공간만 남았다. 단지 내 상가를 제외하면 다른 동네 가게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 동네 길은 이동을 위한 통로만이 아니라 산책, 머무름, 놀이, 대화가 많이 이루어지는 동네의 여가 공간이자 놀이터, 만남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를 커뮤니티의 거실이라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박소현 외, <동네 걷기 동네 계획>(이하 동일)

아이들은 100% 안전한 무균실에서 아무런 탐험거리도 없는 데 혼자서 많은 장난감을 들고 논다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현실에 기반해있어야 하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모험에는 반드시 일정 정도의 상실, 의외성, 갈등, 너무 치명적이지는 않은 위험 요소3)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죠.

명작 성장 영화로 손꼽히는 <스탠바이미>(1986·링크)에서 아이들은 어른 없는 세계에서 무모한 모험을 통해 삶을 배웁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투쟁하며 자신의 용기를 증명해왔습니다. 이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왼쪽) 심부름 도중 물고기가 든 상자를 놓쳐 깜짝 놀란 어린이. 일본 Nippon TV의 리얼리티쇼, <나의 첫 심부름>에서 어린아이들은 직접 심부름거리가 적힌 쪽지를 받고 혼자서 걸어다닙니다. 당연히 위험과 난관들이 존재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어려운 상황에서 침착하게 판단해 스스로 위기를 해결하고 뿌듯해합니다. 이런 '도전' 자체가 불가능해진 거리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 영화 스틸컷, 넷플릭스

많은 학자들은 놀이는 단지 여가일 뿐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 놀이를 통해 어른의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탐색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죠. 그 가운데서 행복, 즐거움 외에도 상실,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아이가 다양한 삶을 체험하기 위해선, 좁은 안전지대보다도 ’전체 도시’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아지는데, 아이가 길이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의 첫 독립이 아닐까? 스스로 주변을 살피고, 차를 조심하고, 길을 잘못 들지 않게 주의하고, 다양한 자극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 아이는 학교가는 길을 통해 동네 환경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매일매일 자란다 [...] 같이 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도 하고,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법을 체득하고, 길을 걸으며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빼놓고 온 준비물이나 신주머니를 부리나케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비 오는 날 바람이 불어 뒤집힌 우산을 잡고 쩔절 매는 아이 [...] 때로 지나친 모험심은 지각(遲刻)을 부른다 [...] 혼자 걷기가 아이의 신체 건강과 정서 발달에 유익하다고 하지만, 정작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이유는 이런 것들을 몰라서라기보다 안전, 특히 차량 안전 때문이다.

이처럼 자동차가 중심이 된 도시는 아이에게만 나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노인 교통사고 사망률은 OECD 전체 국가 중 무려 2위를 차지했습니다.(링크) 그리고 ‘가장 건강하고 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린 사람만을 고려한 도시’에서는,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신경을 다른 곳에 쏟아도 위험해지고 맙니다. 느긋한 해찰도 대체로 불가능할테고요.

제시 싱어는 말했습니다.

(건강 정책 및 부상 예방 전문가인) 수전P.베이커(링크)는 한 가지 방법은 가장 낮은 공통분모인 사용자, 가령 최악의 운전자나 가장 피로에 찌든 노동자, 가장 산만한 보행자 등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다면, 사람을 고치는 데 집착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에너지가 통제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베이커는 “결론적으로 술취한 사람에게도 안전한 세상을 만든다면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평균적이고, 합리적인 인지능력이 있고 […]사람들에게만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데 집중한다면, 술취한 사람, 멍한 상태인 사람 […] 서두르는 사람 등은 안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정반대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만을 위한 도로를 만든다.

-제시 싱어, <사고는 없다>

2)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 관련 고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고급 빗장 아파트에서 일어난 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한 여성이 아파트 단지에 이사온 뒤 일일이 모든 이웃에게 인사를 하며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부탁했고요. 어느날 그의 아들은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한참을 울부짖었어도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죠. 그가 항의하자 나중에 이웃들은 눈을 피하며 변명합니다. "당신 아들인줄 몰랐죠..." 이 밖에도 무균화된 단지에는 오히려 '거리의 보는 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관련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과거 레터를 참고해주세요. (링크)

3) 아이들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이는 당연히 죽을만큼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적당하게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위험을 감내하며 놀이를 할 수 있고,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위에서 말한 '거리의 보는 눈(=사회적 연계, 안전망)'과도 연관이 있겠죠. 관련해서 좀 더 읽어볼만한 글을 아래 <글 속 한문장>에 소개하겠습니다.

【4.우리의 안전은 연결되어 있다】

여기까지 ‘교통 문제’를 단순히 규율을 지키지 않는 민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보다는, 어떻게 도시를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특정 누군가를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요.

*

마지막으로, 과연 안전하고 자유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단지 ‘교통’만의 문제일지에 대해 간단히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이 쓴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는 배달 라이더들의 이야기인데요.

배달 오토바이들은 미디어에서 종종 ‘거리의 민폐’로 비쳐지기도 합니다만, 라이더들은 거리 위에서 어쩔수없이 과속운전, 위험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합니다. 배달 라이더들은 일반 오토바이에 비해서도 몇배나 더 높은 사고사망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고요.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이들의 노동 문제와 동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책 표지 (왼쪽) 배달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장비 및 교육 없이 곧바로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다보니, 그리고 배달 서비스 이용 증가로 인해 도시 교통사고 가운데 배달 오토바이와 관련된 사고는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배민은 2022년 이후 3년 연속 산재 승인건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링크). / 한겨레출판, 경향신문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해보자면, <보행자와 라이더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인데요.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양한 실험과 통계 등을 통해 도저히 안전 운전이 힘든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동료들과 함께 교통신호를 완벽하게 준수하는 방식으로 배달을 하자 - 배달 한 건에 30분 정도가 걸리고,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해 현실적으로 이런 방식의 운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마지막 셋째날은 일명 ‘신호데이’로 교통신호를 완벽히 지키면서 배달했다 […] 실험 전 교통법규를 어느정도 지켜야하는지를 두고 토론이 있었다. 신호를 준수하는 것은 당연했고, ‘안전속도 5030’과 일방통행, 유턴신호도 지키는 것을 기준으로 새웠다. 다만 차간 주행을 금지했다가는 지연되는 배달시간 때문에 음식점과 손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 라이더들은 경험적으로 배달시스템이 교통법규 위반을 전제로 설계됐음을 알고 있었다.

-박정훈,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이하 동일)

저자는 이와 관련해, 과거 안전운임제* 일부 도입을 통해 화물차기사들의 졸음운전과 과적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되었던 사례를 들며, 라이더 개인의 조심, 안전 수칙 준수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보행자와 라이더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안전운임제 = ‘화물기사 최저임금’으로 불리며, 기사들에게 적정 수준의 운송료를 보장해 과로, 과속, 과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2020년에 일부 도입되었으나 2022년 12월31일 일몰제로 인해 폐지(링크)

배달 건당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시간급을 보장받는 배달노동자보다 무리한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긴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고용 형태와 임금 체계문제를 외면하고서는 배달노동자들의 산업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 화물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안전운임제의 의의를 쉽게 설명해놓은 안내문을 읽을 수 있다.

“운송료가 낮을수록 화물노동자는 위험운행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 최대한 오래 일하고, 빨리 달리고, 한번에 많이 실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화물노동자들은 하루 13시간이 넘는 과로와 위험한 과적, 과속을 강요받아왔습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의 주요원인 1,2,3위가 졸음(42%) 주시태만(34%) 과속(8%)이라고 합니다. 낮은 운송료가 강요하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 운행, 과로와 과적이 도로의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2020년부터 시멘트와 컨테이너 2개 품목에서 시범 운행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펜트 품목의 경우 과적 경험이 3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줄었고,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도 50퍼센트에서 27퍼센트로 줄었다. 컨테이너역시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이 29퍼센트에서 무려 1.4퍼센트로 줄었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그간 라이더 일을 하며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던 질문 한 가지를 언급합니다.

“그런데...폭우 때는 배달을 시키는 게 맞나요? 안 시키는 게 맞나요?”

“비오는 날 배달을 시키는 게 맞아요, 안 시키는 게 맞아요?” […] 결국 기후재앙의 순간에 배달 서비스를 할지 말지를 기업과 노동자에게 묻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질문이다. 오히려 폭우나 폭설이 내릴 때 배달회사들이 어떤 규칙 안에서 경쟁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와 국가에 묻는 것이 맞다. 우리는 이미 산안법이라는 답을 가지고 있다. 야외노동자에겐 길거리가 작업장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내리는 건 공장 천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이 질문은 라이더의 사정을 걱정하는 소비자로서 충분히 할 법한 질문이지만, 여전히 비오는 날 위험을 감행하게 하는 것을 개인 소비자 혹은 기업의 선택에 맡긴다면 문제는 완벽하게 해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5.맺음말】

저는 레터를 마무리하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1. ‘교통의 문제’는 달리 말하면 도시에서 거리를 나눠쓰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당연히 서로의 문제가 동떨어져있을 수 없다는 것.

2.그리고, 안전은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

우리가 거리에서 안전하게 해찰하며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오늘 레터에서 살펴본 것처럼 -

일단 가장 취약한 보행자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거리, 기업이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하도록 하는 강제력, 노동 시간 외에도 맘껏 노닥거릴 수 있는 시간,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거리의 풍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도시 개발, 이웃을 믿을 수 있는 안전함과 환대, 여유,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을 수 있는 노동 조건... 등이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다 바로잡기 어려우니까,

오늘날엔 자꾸 어떤 분야에서든 쉽게 때릴 수 있는 드러난 것들(민폐적 개인들)만 무대에 올려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레터에서도 살펴보았듯 “안전은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볼 때 정말 중요한 것에 주목하기 시작한다면 - 희망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

모두가 일상적으로 경계하고 움츠러들기보다는, 안전하게 서로 풍요로운 경험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꿈꿔봅니다.

그리고 그런 도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작게나마 저도 앞으로 궁리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제시 싱어, 김승진 옮김, 『사고는 없다』, 위즈덤하우스, 2024.

-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대강 주제를 잡았을 때는 '사고'라는 키워드로 레터를 쓰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사고들이 너무 광범위해서(교통사고, 산업재해, 안전사고, 원전 등 대형사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한동안 고민한 끝에, 처음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 가장 주목하게 되었던 대목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오늘 챕터2의 내용이었죠. '차량살인'이라는 표현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1920년대의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저를 보고 어리둥절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부분에 주목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거리는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런 낯설게 보기의 효과는 역시 과거의 사례를 읽는 재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통과 관련된 사건, 기사, 이야기를 볼 때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실은,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사고'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이런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는데, 저자 제시 싱어는 스물두살 때 사랑하는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었거나, 본인이 사고로부터 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들이 존재합니다.

조너선 하이트, 이충호 옮김, 『불안세대』, 웅진지식하우스, 2024.

-<바른 마음> <나쁜 교육> 등을 쓴 조너선 하이트의 신간입니다. 아마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어서 직접 읽어보시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언급된 것을 본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우연히 책을 이것저것 집어보고 있었는데 딱 편 책의 면에서 도시의 자동차 이야기와 아동의 자유 박탈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뜨여서 이번 레터에서 함께 다루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소 기시감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직접 읽어보진 않았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살펴보다보니 의외로 <아동의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을 이루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컨셉만 좀 바꿨으면 아예 제목에 놀이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요)

책에서 아동의 또래 놀이 기회를 늘려주자는 취지의 '렛 그로우(Let grow)' 운동 등이 함께 소개되기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과거 놀이 관련 기획(링크) 취재팀에 함께했던 경험이 있어서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도시 출신이긴 하지만, 그나마 거리에서의 아동기를 겪을 수 있었던 세대로서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요(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요ㅎㅎ). 한편 책을 읽고 나서 그가 무 자르듯 나누어 한쪽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체화된 경험'과 '온라인 경험'의 차이를 좀 더 파고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는 아동 발달 뿐 아니라 성인 경험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대적 문제일 것입니다.

박수현 외, 『동네 걷기 동네 계획』, 공간서가, 2015.

-흥미롭게도 '3040 전업주부의 동선'에 초점을 맞추어 도시에서의 걷기 경험-걷기 좋은 도시에 대해 분석한 책인데요. 본문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의 서문의 내용이 개인적으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책이 나온것도 벌써 10년 전이니 이 책에 실린 '도시거리'의 모습(실제 촬영한 많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과 지금 도시거리의 모습이 짧은 기간에 또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간 온라인 장보기 경험이 크게 늘면서+저가종합잡화점(다이소)가 확장되면서 거리의 소소한 잡화점, 슈퍼, 문방구 등은 전멸에 가까운 상황이니까요. '3040 전업주부' 인구 자체도 많이 줄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여튼 저는 이 책의 저자가 '3040 전업주부'에 주목했다는 사실(직주분리가 아닌, 장소에 머무르는 유의미한 성인 인구 집단 중 하나) 및 오늘날 도시의 변화상 자체(장볼 시간조차 없어서 온라인 구매를 더 많이 하는 세태)가 말해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리를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는 거리에 머무르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더라도, 만약 모든 인구가 하루에 15시간씩(...)일하고 집에선 잠만 잔다면 거리는 맨날 조용하겠죠. 그렇다고 할 때, 도시 안전 및 활성화와 관련해서 노동 시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훈,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한겨레출판, 2023.

-책의 부제는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이고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자,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2020)을 쓴 저자의 책입니다. 평소 거리에서 친숙하게 봐오던 배달 노동자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을 하고, 일상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등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와 저자의 경험을 함께 읽으며 체감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반부는 저자가 '초보 라이더'일때 어떤 실수들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적고 있고요. 중후반부에서는 현재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강제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짧게 다루게 되어 아쉬운데요. 읽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배달 라이더 문제 및 그들의 안전이 나의 삶/안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일독을 추천합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아동의 생존권 위협하는 이면도로

독서시간: 약 12분 / 글자수: 약 6300자

🖍글 속 한 문장

“아이들이 걷기 안전한 도시는 모두에게 안전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해외의 경우 1970년대 네덜란드의 본엘프를 시작으로 보행자·차량의 공존을 위해 차로 폭 축소, 굴곡 도로 등 차량 속도 제한에 나섰다. 본엘프에서는 보행자가 도로의 전부를 사용할 수 있고, 어린이들은 도로상에서 놀아도 상관없다. 운전자는 보행자의 보행속도보다 빨리 운전해서도, 보행자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보행자 역시 불필요하게 운전자의 운전을 방해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비슷한 보행권 확대 정책은 독일의 템포30존, 영국의 홈존, 일본의 커뮤니티도로 등으로 확산됐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해 1월 성북구 길음동의 한 골목길에서 여덟살 어린이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가던 아이를 SUV차량이 뒤에서 치고 지나갔던 건데요. 사실 어린이들은 큰 길보다도 골목길로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이면도로에서의 보행자 안전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해외 사례들을 통해, 더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 - 굳이 운전자의 권리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정책의 목표를 수립하고 실현하려는 의지죠.

네 인생의 첫 심부름을 응원해!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3700자

🖍글 속 한 문장

'나의 첫 심부름' 속 어린이들은 때로 울고, 겁내고, 할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포기하려고 하다가도, 누군가의 작은 응원과 도움이 찾아올 때마다 계속해나갈 용기를 얻는다... '나의 첫 심부름'은 모든 어린이에게 '집 밖의 어른'인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그건 바로 어린이를 환대하는 어른,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른, 어린이의 크고 작은 성취를 기꺼이 칭찬하고, 어린이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좌절 모두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어른이다. 어린이를 위한 자리를 준비해두고, 어린이의 출입을 막지 않으며,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어린이가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일을 돕는 어른이다. 그런 어른을 우리는 공동체를 위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이라고 부른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레터의 챕터3에서 사진을 통해 짧게 소개했던 일본의 프로그램 <나의 첫 심부름>을 윤이나 작가가 보고 쓴 칼럼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컨셉의 프로그램인데요. 일본에선 벌써 방영된지 30년이 넘었을 정도로 인기 장수프로그램이라고 하네요. 이런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 만약 만들게 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이 가능은 할까? 등의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면 과거엔 부모님이 아이에게 대신 장을 봐오라고 한다든지, 건너편 노인정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한다든지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아이들이 혼자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도시의 가게 등이 더 커지고, 아이들이 혼자서도 자유롭게 들어갈 만한 장소가 적어지는 등의 이유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도 칼럼에서 말했듯, 아이를 먼 발치에서 응원하고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어른들의 존재도 중요할 것입니다.

차 없는 도시, 스페인 폰테베드라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3000자

🖍글 속 한 문장

어느 날 새롭게 시장이 된 사람이 ‘우리 도시의 내부에는 앞으로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자동차로 인한 사망과 부상을 입는 시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바꿔야 합니다. 차는 외곽에 주차하고 걸어 들어오셔야 합니다.’라고 선언을 하게 되면 어떨까? 어느 나라 어느 도시고 가릴 것 없이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실제 그런 인물이 있었다. ‘차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이 야심 찬 시도는 1997년경 시작되었다.문제의 도시는 스페인 서북부의 포르투갈 경계부의 ‘폰테베드라’라는 도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교통사고가 많이 나기로 악명이 높았던 스페인의 폰테베드라라는 도시에 대한 칼럼입니다. 이 혁신을 결정한 인물은 미구엘 로레스 시장이었는데요. 그는 가정의학과 의사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시와 도시민들의 건강에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가 시장으로 선출될 당시 인구 6만5000명 규모의 도시에 무려 자동차가 3만대가 넘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처럼 자동차가 사라진 도시를 시민들이 반겼다고 합니다.

라이더 등 비임금노동자 860만 넘었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300자

🖍글 속 한 문장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인적용역 사업자) 규모가 처음으로 860만명을 넘어섰다. 비임금 노동자 절대 수는 20대 이하 청년층에서 많았지만, 60대 이상 고령층이 1년 사이에 가장 많이 늘었다. 내수 침체 타격으로 전반적인 비임금 노동자의 증가 추세는 둔화했다...이들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로 분류돼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 3.3%를 내면서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비임금 노동자’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요. 이는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을 뜻합니다. 코로나 대 유행기인 2021년에 약 12%로 증가율이 최고점을 찍고 이후로는 조금씩 낮아졌지만, 전체적인 규모는 계속 늘어왔다고 합니다. 특히 50~60대 층에서 가장 증가율이 높았다고 하네요.

여전히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비임금 노동자들을 사회보험 가입 및 사회안전망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지난 회차의 반응

지난 회차(‘우울한 얘긴 우울할까? : 못나도 즐거울 수 있다[4월의김스피]’)에 대한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지로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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