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플레이션

2024-12-18

서울 신문로 한 대형 교회 앞 길가엔 조그마한 노점 호떡집이 있다. 얼마 전 이 집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다.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호떡 반죽 10㎏을 3만3000원에 받아다 호떡 한 개에 1500원에 팔았다. 그러다 찹쌀과 흑미가 들어간 고급 반죽으로 바꿨더니 납품받는 가격이 5㎏에 3만원이 됐다. 호떡값을 2000원으로 올렸지만 한 달 정도 지나 다른 집이 호떡값을 1500원으로 내려 할머니도 같이 내렸다. 그새 반죽 가격은 3만1000원이 됐다. 원재료값은 두 배 올랐는데 500원만 올려도 손님이 준다는 것이다. 팔아도 남는 게 없으니 장사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물가 상승 고통을 더 크게 겪는다는 실증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은행이 가공식품의 가격별 물가지수를 분석해 18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 팬데믹 후 국내에서 저가 상품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3배가량 더 올라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이 심해졌다고 한다. 칩플레이션은 값이 싸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칩플레이션이 심할수록 저소득층 고통이 더 컸고, 계층 간 인플레이션 불평등도 심해졌다고 분석된 것이다.

같은 품목이라도 다양한 브랜드가 있고 개별 가계마다 사용하는 제품이 달라 체감물가도 각각이다. 살림이 어려울수록 저렴한 상품에 수요가 몰리니 당연히 가격 인상요인이 됐고, 저소득층은 올라간 가격에도 싼 제품을 선택하니 가격이 인상되는 악순환이 발생했을 것이다.

같은 위기와 가격 변동이라도, 부자보다 가난한 이들의 부담이 더 크다는 건 이제 경험칙이 됐다. 금리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자산가들은 혜택이 커지나, 대출이 많거나 집 없는 서민들은 그 고통을 감당하느라 하루하루가 지옥이 된다. 한국을 뒤흔든 1997년 외환위기가 대표적 사례다. 그래서 경제약자와 서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는 부자들이었다.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고 상속세 부담도 덜어주려 했다. 부자감세로 세수가 부족해지자 서민 예산들도 깎여나갔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의 불공정한 경제운용 방향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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