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도 집어삼킨 산불…기후변화로 문화유산이 사라진다

2025-05-04

문화유산 화재피해 최근 증가 추세

목조피해 최다, 하회마을은 5번 화재

올해 영남권 산불은 ‘사상최악’

지난 3월 영남권을 덮친 산불은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낳았다. 산불 면적은 10만4000㏊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75명이 죽거나 다쳤다. 기후변화로 산불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도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지정·등록 문화유산 중 화재로 피해를 입은 사례는 4건이었다. 직전 2023년 8건에 비하면 다소 줄었지만 최근 경향성을 놓고 보면 화재로 인한 피해 건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10년 전인 2015년 화재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 건수는 2건이었다. 이후 2016∼2020년 사이엔 2017년(2건)을 제외하곤 피해 건수가 각각 1건에 불과했다.

2021년부턴 화재 피해 건수가 6건으로 크게 늘었고 2022년 6건, 2023년 8건 등을 기록했다. 피해 사례를 집계한 2008년부터 2024년까지의 국가유산 화재 피해 건수는 총 56건이었다.

국가유산청이 올해 1월 공개한 ‘국가유산 재난발생 통계 및 사례 편람’을 보면 2008년∼2023년 사이 가장 많은 화재 피해를 본 문화유산은 국가민속문화유산(21건)이었다. 그외 사적(13건), 보물(6건), 국가등록문화유산(4건), 명승(4건), 국보(3건) 등의 순으로 피해가 집계됐다.

문화유산 유형별로는 목조의 피해가 30건으로 가장 많았다. 석조(10건)와 자연유산(5건), 능·분·묘도 각각 3건 등도 피해를 입었다.

같은 문화유산이 여러차례 화재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경북 안동시의 하회마을과 제주 성읍마을은 이 기간 5차례나 화재가 났다. 마찬가지로 경북의 성주 한개마을과 경주 양동마을도 2차례 화재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또다시 하회마을 코앞까지 접근했지만 소방당국이 병산서원과 문계서원 등 주요 문화유산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초가집 등에 물을 뿌리며 화재를 막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625∼702)가 만든 사찰로 알려진 의성 고운사에서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 두 건물이 전소되는 등 30건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 1980년대 후반 임하댐 건설로 ‘이사’했던 안동의 옛 서당과 고택도 화마를 이기지 못했고, 영양 답곡리 마을을 지켜주던 만지송도 검게 그을렸다.

올해 사례집을 펴낸 국가유산청과 한국건축안전센터 연구진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의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자연재해의 거대화 및 복잡화가 발생함에 따라 국내·외 국가유산에 다양한 재난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기후변화 등 이상기후 현상에 따라 국가유산의 재난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피해규모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산불 피해에 한정하더라도 강풍, 고온, 건조한 기상 조건이 맞물려 산불이 대형화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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