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간다는 것, 경쟁 부문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19일 서울 용산구 CGV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서 이 영화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열리는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소감을 밝혔다. 다만 그는 “<친절한 금자씨>가 경쟁 부문에 간 지 20년 된 건 맞는데 <쓰리, 몬스터> 옴니버스로 비경쟁 부문에 간 적도 있고 심사위원으로 간 적도 있다 보니 오랜만에 갔다는 기분은 별로 안 든다”고 했다.
박 감독은 또 <어쩔수가없다>가 다음달 부산국제영화제(9·17~26)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을 언급하며 “부산국제영화제가 30주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 영광스럽다”며 “한국 영화 부흥과 함께하는 역사라 소중하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2022)이후 박 감독이 3년만에 내놓은 <어쩔수가없다>는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던 25년 차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가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박 감독은 “(영화는) 멀쩡했던 보통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면서 어떻게 되는지를 묘사하는 이야기”라며 “실직과 해고자의 문제를 다루니 심각한 영화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다. 그리스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한 바 있다. 그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서 사춘기 시절부터 많이 읽었지만 이 정도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없었다”며 “무엇보다 내가 소설 속 유머를 영화화한다면 슬프게 웃긴, 부조리한 유머가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어떻게든 포기할 수 없는 것인 ‘집’은 인물들 다음으로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다”며 “집은 물론이고 마당에 심어진 꽃과 나무 하나까지 신중하게 선정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음악의 장르가 매우 다양하다.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 애비로드에서 작업 한 만큼 연주자의 실력은 물론 음질까지 최상에 도달한 것 같다”고 했다.

OTT가 아닌 극장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두고는 “제가 보수적이어서 그렇다”면서도 “작은 부분까지 시간을 들여 매만져 완성된 작업이 큰 스크린과 좋은 스피커, 그리고 중간에 멈추거나 나갈 수 없는 공간에서 감상해야 제가 여러분께 선사하려고 했던 노력이 다 전달될 수 있어서 극장을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해외 관객들의 반응을 어떻게 예상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외국인 관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영화 속에 조용필, 김창완 등 우리나라 가요가 많이 들어가는데, (해외 관객분들이) 들으시면 더 재밌어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만수’역의 배우 이병헌(55)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박 감독에게 “웃겨도 돼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님이 만드실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웃음 포인트가 많아 바르게 읽었는지 묻는 차원이었다”며 “감독님께서 ‘그러면 더 좋다’고 하셔서 슬픔과 웃음 등 여러 감정을 함께 느끼는 묘한 상황을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출’역으로 출연한 배우 박희순(55)도 “박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시나리오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로 출연을 결심했다”면서도 “(대본에 웃음 포인트가 많아) 칸을 포기하고 천만(관객)을 노리는 건가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영화는 오는 9월 국내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