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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청소기로 한국 시장 공략에 자신감이 붙은 중국 가전 기업이 영업·마케팅에 속도를 내는 반면 고용·투자 등 국내에 기여는 태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법인이 있어도 판매 촉진을 위한 목적일 뿐 제품 판매에 따른 책임은 수입원인 총판에 전가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고용과 투자가 없는 만큼 사실상 언제든 철수가 가능할 정도다.
주요 중국 가전기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9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물건을 공급받는 일종의 대리점 격인 총판 중심으로 국내 사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中 가전, 책임은 총판이
중국 로봇청소기 브랜드 로보락을 비롯해 에코백스, 드리미, 나르왈은 모두 국내서 총판 체계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로보락과 드리미는 국내 법인이 있지만 총판 체제 조율 등 소극적인 관리 중심 운영에 한정돼 총판이 수입·유통을 책임진다. 에코백스는 한국인 책임자를 고용했지만 정식 법인은 국내에 없다. 나르왈은 본사명인 '운경인텔리전스' 명칭으로 국내에 사무소 형태를 운영할 뿐 국내 상주인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로보락, 드리미, 나르왈의 공통점은 이들 법인·사무소 대표가 모두 중국인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국내 상주 근무 여부도 불분명하다.
국내 가전 유통 업계 관계자는 “한국판매에 필요한 KC 인증, 테스트, 수입절차 등에 필요한 인력을 모두 수입원인 총판에 일임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진출을 위해 현지 전문가부터 고용하는 글로벌 기업의 행보와 정반대다. 주요 글로벌 기업은 현지 시장을 가장 잘 아는 현지 전문가를 영입해 지역 대표로 임명하거나 요직을 맡겨 한국에 특화한 전략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왔다.
중국 가전 기업과 일한 기업 대표는 “한국 특유의 높은 품질과 보안기준, 사후서비스(AS)의 편의성, 브랜드 신뢰도 확보를 위한 활동 등이 필요하다고 여러차례 제안했지만 판매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에만 집중했다”며 “국내에서 투자도, 고용도 없는 회사가 실적만 신경쓰는 걸 보니 한국 내 반응이 시들해지면 언제든 빠져나가기 쉽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영업 확대에 시동을 건 중국 가전 기업은 최근에서야 국내 조직 설립과 운영이 진전되는 모습이다.
샤오미는 총판을 앞세워 국내에 제품을 판매하다가 지난해 9월 한국법인인 샤오미테크놀로지코리아 유한책임회사를 설립했다. 본격적인 전기차 판매를 위한 투자로 해석된다.
TCL은 지난 2023년 11월 한국법인 티씨엘일렉트로닉스코리아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TV 중심으로 국내 영업을 해왔다. 초기에는 총판 중심으로 판매했으나 최근 직접 수입 체제로 전환하고 채널 영업 강화와 품목 확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디어는 지난 2022년 3월 엠씨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했다가 지난해 '마이디어코리아 유한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국내 영업 확대를 준비하는 차원이다. 지난해 중순경 본사 파견 인력이 국내 상주를 시작하며 법인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이얼은 지난 2016년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문을 인수한 후 GE코리아와 조직을 흡수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백색가전 기업도 모두 중국인이 법인 대표다.
◇매출 상위권 걸맞은 고용·신뢰 확보 활동 수반해야
중국 본사의 총판 중심 운영은 자칫 판매책임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제 때 보상받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흔치 않은 사례지만 제품 하자로 사용자가 중대한 상해를 입거나 화재 등 재산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자칫 총판과 제조사간 책임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IT 기업 한 관계자는 “규정상 수입원이 소비자 판매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지게 돼 있어 총판이 수입원이면 소비자 피해를 총판이 배상해야 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고 구매한 브랜드가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총판 관계자는 “수입원의 배상책임 규모 때문에 배상 가능한 범위에서 제품 수입을 결정하고 제조사 신뢰도도 따질 수밖에 없다”며 “총판 규모가 크면 배상책임 능력도 크다고 보기 때문에 제조사들이 대형 총판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전 업계에서는 중국 제품의 국내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에 걸맞은 조직 운영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로보락의 경우 국내 매출이 2023년 약 2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2800억원대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기준 국내 가전 매출 7위권이다.
소비자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 불편한 사후서비스(AS) 체계 개선 목소리도 여전하다.
현재 중국 가전사들은 코오롱글로벌, SK네트웍스, 팅크웨어, 쿠팡, 롯데하이마트 등 별도 전문기업과 계약을 맺고 AS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비자 불만 대부분은 'AS센터 전화 연결이 오래 걸린다', '기사 방문 일정을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등 빠른 대응 요구다.
국내 가전 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촘촘한 서비스 네트워크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기 쉽지 않다”며 “빠르고 촘촘한 AS 체계 여부가 구매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김신영 기자 spicyzero@etnews.com,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