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가 최적 비율로 섞인 볼거리, 누구라도 수긍할만한 인생의 메시지. 디즈니 콘텐츠가 가진 주요한 특징이자, 다양한 문화권의 여러 세대 관객에게 두루 사랑받는 이유다.
22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알라딘> 역시 디즈니의 핵심 인기 요인을 갖춘 작품이었다. 총 150분(인터미션 20분)의 공연 시간 내내 관객의 이목에 꿀을 발랐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삼킬만한 비타민 같은 교훈을 안겼다.
이번 한국 초연은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10년 만이다. <알라딘>은 브로드웨이에선 오픈 런 형태로 장기공연하며 <라이온 킹>과 함께 디즈니를 대표하는 흥행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알라딘>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1개 프로덕션이 제작됐고, 2000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내용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익히 알려진 대로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등장인물을 흥겹게 소개하며 공연이 시작된다. 지니는 능청스러운 입담과 화려한 춤으로 관객의 기대감을 한층 더 자극한다. 아그라바 왕국의 가난한 청년 알라딘과 그의 친구들, 정략결혼에 거부감을 보이는 공주 자스민이 나타난다. 술탄이 되려는 악당 자파와 그의 우스꽝스러운 부하 이아고는 음모를 꾸민다. 자파의 사주로 신비한 램프를 손에 넣은 알라딘은 지니의 주인이 돼 세 가지 소원을 빌 기회를 얻는다. 알라딘의 소원은 왕자가 돼 자스민의 사랑을 얻는 것이지만, 주인공에게는 언제나 역경이 있다.
선량한 남자 주인공,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 웃기는 조연은 변주 없이 익숙한 캐릭터들이다. 주인공에겐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악당은 벌을 받는다. 극 중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아는 맛이 더 맛있잖아.” 잘하는 식당은 흔한 된장찌개에도 비법이 있다. <알라딘>에는 두 번의 ‘비법’ 같은 장면이 있다. 오프닝 이후 사라졌던 지니가 1막 종반부 등장해 부르는 ‘나 같은 친구’(Friend Like Me)와 알라딘과 자스민이 마법 양탄자 위에서 부르는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이다. 순식간에 황금 동굴이 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나 같은 친구’ 장면은 <알라딘>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다. 거의 10분에 걸쳐 지니와 앙상블들이 브로드웨이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입 딱 벌어지는 무대를 꾸민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박수가 한참을 이어져 지휘자는 공연을 재개하기 위해 박수를 끊는 음악을 연주해야 했다. 디즈니 역사에 남는 명곡 ‘새로운 세상’ 장면은 가장 서정적인 순간이다. 시작하는 연인이 탄 마법 양탄자가 떠오르면, 공연장은 순식간에 사막의 밤하늘이 된다.
알라딘, 자스민, 지니 등 주요 인물은 저마다의 고난을 겪고 이를 넘어선다. 마법으로 왕자가 된 뒤에도 가난한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을 감추지 못한 알라딘은 “내가 아닌 내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전제군주 국가의 공주 자스민은 진취적이다. 왜 자신은 술탄이 될 수 없는지 묻고, 남편에게 “육아는 돕지 않고 함께 하자”고 요구하고, 마음에 들면 청혼도 먼저 한다. 마법으로 돈, 권력 무엇이든 넘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지니는 자신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자유”라고 말한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만한 보편적인 메시지다.
한국 공연에선 김준수·서경수·박강현이 알라딘, 정성화·정원영·강홍석이 지니, 이성경·민경아·최지혜가 자스민 역을 맡았다. 개막일엔 캐스팅 중 가장 주목받는 김준수·정성화·이성경이 등장했다. 그간 비극적이고 우울한 배역을 주로 맡으며 뮤지컬 톱스타로 자리했던 김준수는 유쾌하고 선량한 캐릭터로 의외의 ‘소년미’를 발산한다. 정성화는 등장 장면마다 무대를 확실히 장악하는 관록을 보였다. 이성경은 여러 무대에서 상당한 노래 실력을 보여 이번 뮤지컬 데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다만 무대를 자신의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선 일정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원작을 그대로 올리는 ‘레플리카’ 버전이지만, <흑백요리사>의 인기 대사 같이 현재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요소를 적절하게 넣어 제작 시기와 공연 시기의 시차를 줄였다.
<알라딘>은 내년 6월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7월부터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예매가 풀린 2월 초까지는 전 좌석이 매진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