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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寒天)
박기섭(1954∼ )
한천에
칼 한 자루
거꾸로 박혀 있다
어느 일순이면
떨어져 뇌수에 박힐
눈부신
단죄를 꿈꾸는
저 살의의 충만!
-비단 헝겊(태학사)
지조(志操)가 사라지고 있다
미당 서정주는 그믐달을 ‘님의 고운 눈썹’으로 보았는데, 박기섭은 겨울 하늘에 거꾸로 박혀 있는 ‘칼 한 자루’로 보았구나. 살의가 충만한 단죄의 칼로……. 미당은 달을 우리 시의 주된 정서인 여성적 서정으로 노래했는데, 박기섭은 한국시에서 보기 드문 남성적 정서로 노래했구나. 박기섭 시조의 이런 남성적 정조(情調)는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개성적 세계다.
숱한 담금질 끝에/직립의/힘을 고눠/마침내 일어서는/견고한/자존의 뼈/스스로 극한의 빙벽을/이를 물고 버틴다 - 못1
못을 수직으로 서 있는 ‘자존의 뼈’로 보고 있다. 그것은 조선조 선비의 올곶은 지조를 암시한다. 지조가 현실에 무릎을 꿇고,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 그리운 남성적 힘의 세계를 그의 시에서 본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