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원 大記者

이대흠 시인(1967년생)
전남 장흥 출신이며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함께 읽기> “바퀴는 얼마나 슬픈 짐승이냐” 바퀴를 슬픈 짐승에 비유했다. 그럼 왜 바퀴를 슬프다고 했을까?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반짝이며 빛나는 것들을 실어 나르기 때문이라 하겠다. 바퀴는 결코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바퀴 위에 타고 있는 게 빛이 날 뿐, 그 빛나는 존재를 실어 나르는 게 바퀴다. “온몸으로 부딪히고 상처 입으며 바퀴는 / 함께하는 모든 것을 자기 위로 올린다” 바퀴는 길 잘 닦인 아스팔트 위로 구르기도 하지만 자갈밭이든 또 푹푹 빠지는 진창이든 가야 한다. 스스로는 밑바닥에 깔려 상처 입지만 자기 위에 놓인 모든 존재를 위해 거친 길을 마다 않고 간다. “(희생만큼 지독한 종교가 어디 있겠는가)” 아마 이 시행에 이르면 다들 잠시 호흡을 멈출게다. ( ) 속이라 눈에 더 띄기도 하지만 시 전체를 아우르는 시행이기 때문이다. 바퀴는 평생 퍼내지 못한 속울음을 쌓고 쌓으며, 쉬지 않고 스스로 굴려야만 한다. 그래서 희생의 대명사가 되었다.
“모난 데 다 버리고 / 둥글다는 것은 얼마나 / 아픈가” ‘모난 데’는 튀어나온 데라기보다는 욕망으로 봐야겠다. 우리 모두는 한때 물욕, 명예욕에 묻혀 살다가 이윽고 둥글게 변한다.그런 헛된 욕심을 다 버릴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스스로는 바닥에 엎드리면서 함께 하는 다른 존재를 위로 올려준다.어쩌면 시인은 이 한 편이 시를 쓰고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게다. 읽는 제가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험준한 세상길을 갈 때 다리가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절망과 좌절에서 일어날 수 있다. 희생의 아이콘 '바퀴', 그 바퀴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을 아직 살 만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잠시 ‘희생만큼 지독한 종교’와 같은 존재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저작권자 © 전국매일신문 - 전국의 생생한 뉴스를 ‘한눈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