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잘 알려진 『국부론』(1776년)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이 책이 나오기 17년전 인간행위의 도덕적 적정성 문제를 다룬 『도덕감정론』(1759)을 출간했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거만하고 냉혹한 지주’의 사례를 통해 경제 현상을 진단했다. 지주는 광대한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모두 소비하고 싶지만 그의 위장 크기는 욕망에 비례하지 않아 대부분의 생산물을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분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주는 궁전 건설, 사치품 소비, 시종과 장인 고용 등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부를 분배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부의 분배는 지주의 인간애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스미스가 나중에 『국부론』에서 발전시킨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의 초기 형태다.
부자 순유출 규모 3년만에 6배
자산가 떠나면 경제가 흔들려
세계 각국에서 부자의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사는 곳을 옮기는 부자가 해마다 늘고 있어서다. 영국의 투자 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는 올해 유동성 투자자산 100만 달러(약 14억3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 14만2000명이 거주지를 옮길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많다. 자산가 순유출국은 영국이 1만6500명으로 가장 많을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은 2400명으로 중국(7800명), 인도(3500명)에 이어 세계 4위의 부자유출국에 올랐다. 영국은 지난 4월 200년 넘게 유지해온 비거주자 세제 특례를 폐지하면서 수많은 부자가 짐을 싸고 있다.
한국의 부자 이탈 속도는 특히 가파르다. 2022년 자산가 순유출 규모는 400명에 불과했지만 2023년 800명, 2024년 1200명으로 늘어나더니 올해는 지난해의 두배 수준으로 급증세를 보일 전망이다. 3년 전의 6배에 달한다. 헨리앤드파트너스는 올해 이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152억 달러(약 21조원) 상당의 자금이 유출될 것으로 추산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보유한’ 자산가 네 명 중 한 명(26.8%)은 투자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는 약 46만 명(2024년 기준)으로 추산돼 전체 인구의 0.9%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2826조원으로 한국 가계 전체 금융자산(4822조원)의 58.6%에 달한다. 이들이 떠나면 재정과 소비, 일자리 모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요즘 부자는 단순히 세금만으로 거주지를 바꾸지 않는다. 사업 환경, 거주 환경, 상속 계획, 투자 기회를 고루 따져가며 이민 갈 나라를 정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찰스 티부가 1956년 체계화한 ‘발로 하는 투표(voting with feet)’ 가 부자 사이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은 세금과 공공서비스 조합이 자신에게 맞는 지방 정부를 선택해 이주할 것이고, 이는 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지방 정부 간 경쟁을 낳고, 결국 효율적인 공공재 공급으로 이어진다고 티부는 분석했다. 올해 가장 많은 자산가(9800명)가 순유입될것으로 예상되는 아랍에미리트(UAE)는 개인소득세·상속세 등이 없다. 두 번째로 많은 자산가가 유입되는 미국(7500명)은 창업·투자 생태계가 활발하고, 주마다 거주와 세제·규제 환경이 다양하다. 자본가가 ‘돈을 벌고 지키고 불리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한국 상속세율은 최대주주 할증 적용시 최대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창업과 벤처 생태계도 활력을 잃고 있다. 이대로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발’이 떠날 것이다. 자산가 이탈은 통계 속 숫자 그 이상을 뜻한다. 단순히 부의 감소가 아니라 ‘경제의 윤활유’가 빠져나가는 일이다. 자산가는 소비로 산업을 살리고, 투자로 일자리를 만든다. 이들의 ‘사치와 변덕’이 때로는 국가 혁신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부자가 모이는 제도를 갖춘 나라가 부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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