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 땐 "봉사활동"…외국인들 관광비자로 영어학원 불법 취업

2025-09-14

지난해 서울의 한 영어 키즈카페에서 일하던 A 씨(26)는 외국인 동료들이 자신과는 달리 현금으로 일당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겼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 동료들이 가진 비자로는 편의점, 식당 등에서 단순 업무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이들에게 사실상 불법 행위였다. 이에 키즈카페 종사자들은 외국인 동료들이 신고로 적발될 경우를 대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입을 맞춰야 했다. A 씨는 “영어 키즈카페는 영어를 쓰는 환경에 자녀를 노출하기 위해 찾는 곳이어서 원어민 직원이 꼭 필요하다”며 “비수도권으로 갈수록 정식 비자를 보유한 직원을 채용하기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유학생을 쓰는 추세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취업 비자 미비를 이유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가운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유학생 등이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지 않은 채로 암암리에 어학 강사 등의 활동을 하는 사례가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체류하며 활동하는 외국인 강사들의 비자 실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1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원어민 강사를 구하는 한 어학원에 전화로 ‘유학생 채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자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어학원은 학원강사 취업이 제한된 유학생에게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파트타임’ 형태의 근무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국내 학원가에서 합법적인 원어민 강사로 일하려면 일반적으로 E-2(회화지도) 비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영어권 7개국 출신에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학력이 요구된다. F계열 장기체류비자(거주·재외동포·영주권·결혼이민 등) 소지자도 학원강사로 취업하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다. 반면 관광 목적이나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비자를 소유한 자가 강사로 활동하면 불법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 취업은 곳곳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분위기다. 자체적으로 구직자를 심사할 여력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학원이나 유치원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학원장들은 비자 문제가 해결된 외국인을 만나는 경우가 “마치 복권 당첨 같다”고 입을 모은다. 학원장 B 씨는 “학원과 원어민 강사를 연결하는 에이전시(대행사)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며 “학력, 출신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속인 사례도 봤다”고 했다. 또 다른 학원장 C 씨는 “강사들이 소지한 비자로 강사 취업이 가능한지는 우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우리가 직접 선별하기도 어렵고 에이전시를 통해도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도 한국에서 어학강사로 불법 취업을 한 이들의 경험담이 심심찮게 공유된다. 한 외국인은 “학원에서 귀찮은 서류 작업을 피해 불법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면서 “이런 경우 언제든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로는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학원의 비용 절감 욕구 등이 꼽힌다. ‘백인 원어민’을 선호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반면에 비자를 보유한 구직자는 찾기 어렵다 보니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부 학원은 관광비자 소지자를 시급 2만 원 선에서 채용할 수 있는 만큼 비용 절감을 위해 이들 원어민 채용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관계 당국의 관리는 허술한 편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사 채용·해임 미통보나 무자격 강사 채용 적발 사례는 1182건에 달했다. 올해는 8월까지만 해도 235건이 적발됐다.

일각에서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강사들의 전반적 실태 점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부산에서 미국인 불법체류 학원강사에 의해 발생한 여아 성추행 사건과 같은 사각지대를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지방 한 교육청 관계자는 “관할 학원이 1만 곳 정도 되지만 강사 모니터링 담당자는 3~4명 수준”이라며 “현재로선 학원장들의 준법정신이 요구되는 사안일 뿐 실질적 관리·감독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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