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해를 한결같이 걸어온 박정원 춤꾼의 길 위에는 수만 번의 발 디딤과 그보다 더 많은 땀방울이 그려져있다. 지난 21일 강명선현대무용단 예술공간에서 이뤄진 이번 공연 <봄날은 온다>는 50대 후반 이제는 삶의 풍파마저 예술의 양분으로 승화시킨 한 무용가의 장엄한 고백이자 긴 겨울을 지나온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무대였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예술가 그 ‘선함’의 미학
기억 속의 그는 늘 연습실의 마지막 불을 끄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선하고 올곧았던 성품은 그의 춤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무용수에게 기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몸짓에서 배어 나오는 ‘기품’과 ‘배려’는 오직 살아온 결에서만 기인한다. 무대 위에서 제자들을 아우르는 그의 눈빛에는 권위 대신 자애로움이 독무(獨舞)의 손끝에는 자신보다 무대를 먼저 정리하던 그 시절의 겸손함이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
▲찬란했던 영광과 멈춰야 했던 통증의 기록
전북 지역 유일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화려한 훈장이자 동시에 무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비상하던 시절 예기치 않게 찾아온 삶의 시련은 그의 춤을 잠시 멈추게 했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삶의 무게가 예술을 짓누르던 아픈 시간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멈춤’의 시간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춤을 출 수 없었던 시간 동안 그는 온몸으로 삶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 무대에서 보여준 깊은 호흡은 단순히 연습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고통의 터널을 묵묵히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뚝심’이었다.

▲걸음마부터 그려낸 정신세계, 진정한 사제(師弟)의 길
이번 무대에서 무엇보다 가슴 벅찼던 지점은 제자들과 함께한 호흡이었다. 오늘날 일부 예술계에서는 잠시 스치듯 가르치고 배운 인연을 ‘제자’라 칭하며 사제지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모습들이 보이곤 한다. 그러나 박정원예술가에게 제자란 그런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그에게 진정한 스승과 제자란 첫 걸음마부터 시작해 그 몸짓에 깃들 정신세계까지 함께 그려준 사람을 의미한다. 단순히 동작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제자의 영혼에 새겨 넣는 일. 그는 30년 세월 동안 제자 양성에 자신의 모든 진심을 쏟아부었다. 그가 일구어 놓은 비옥한 예술적 토양 위에서 스승의 등을 보고 자란 제자들은 그의 선한 인품과 예술에 대한 결벽에 가까운 진지함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땅속 깊이 서로를 보듬는 뿌리는 흔들림마저 하나의 춤으로 만든다”
기교보다 무거운 ‘정중동(靜中動)’의 미학. 이제 그의 춤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다. 삶이 힘들어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품격을 지켜낸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을 그려나가고 있다.멈춰 서 있던 시간조차 춤에 대한 공부와 제자들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진정성이 오늘날 이 장엄한 무대를 가능케 했다.
▲다시 피어난 꽃, 그 향기는 더욱 짙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울컥한 감정은 그가 견뎌온 세월과 제자들을 향한 헌신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40년 전 연습실 뒷정리를 하던 그 마음 그대로,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묵묵히 예술의 길을 청소하고 후학들이 걸어갈 길을 진정성을 담아 만들어가고 있다.

▲무용가 박정원
그의 인생에 이제야말로 진짜 ‘봄날’이 시작되고 있다. 먼지 자욱한 세상을 지나 하늘의 정원에 닿아 비로소 만개하는 천상의 화원까지 이루어가는 아름다운 봄날이 될 것이다. 비바람을 견디고 핀 꽃이기에 그리고 그 곁에 스승의 혼을 이어받은 진정한 제자들이 있기에 그 향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진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거장이 닦아놓은 길위에 비로서 꽃이 피어나듯 그녀는 지금도 우리곁에서 예술이라는 고독한 길을 정갈히 매만지며 진정성 하나로 그길을 뒤따르는 후학들 뒷모습까지 조용히 지켜주고 있다.
글 = 강명선 무용평론가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BC 연기대상] 서강준, 대상 영예 "대체되고 싶지 않다"](https://image.mediapen.com/news/202512/news_1070512_1767107655_m.jpe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