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빈집이 900만 채에 달하는 일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빈집에 대해 수요자가 있으면 집주인이 돈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집을 넘겨준다는 것이다.
빈집은 손을 대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폐가처럼 변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한 번 망가진 폐가는 주변 생활환경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리하지 않아도 세금 등 기타 비용이 지속적으로 나간다. 일본에서 집주인이 돈을 받지 않고서라도 집을 넘기는 이유이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마을에 노인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자식들은 그 집을 좀처럼 처분하지 않는다. 팔아도 큰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 언젠가 돌아와 살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어도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흉물스럽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집들이 전국적으로 쌓인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완주 하리공간 완주온날에서 2인 사진전이 열렸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영섭 작가와 충주를 배경으로 한 공영환 작가의 사진전이다. 이 사진전이 열린 곳은 예전에는 폐가였다. 엄밀히 말하면 폐가는 아니고 집주인이 분당에서 살고 있다. 이 집이 몇 년째 방치된 이유는 위와 비슷한 사유이다. 한동안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진 집의 운명은 뻔할 뻔했다. 하지만 군에서 폐가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집의 운명이 달라졌다. 지역의 문화 공간이자 전시장으로 변신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사진전에 참여한 두 작가의 작품은 담벼락에 내걸렸다. 담에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담벼락 전시회는 처음이다. 두 작가를 관통하는 테마는 <완주는 낯섦입니다>이다. 그 낯섦이라는 단어가 이번 전시회만큼 딱 맞아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에 익숙했던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벗어나 일반 가정집에서 한다는 것도 그렇고 담벼락에 작품을 내걸었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낯설다는 사실은 낯익은 것과의 결별을 통해서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몸에 배어 편하고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문물이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거부와 반발을 하는 이유는 이후가 예측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섦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수반한다.
예술에서도 새로운 사조가 나올 때마다 기존 세력과 신진 세력 간의 갈등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예술은 그 변화를 거듭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고 인류의 문화유산 또한 풍부해질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역시 AI의 본격적인 도입이라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는 AI라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는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있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건설에 치중하다 보니 인프라가 없고 나중에 보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돈을 보고 시작한 건설사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자 부도를 내버렸다. 한번 사람들이 외면하자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텅텅 비었고, 당연히 상가나 주변 건물 또한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다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투기와 공급 과잉, 인간의 욕망이 결합한 결과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중단된 공사 현장이 상당수 존재하며 이는 지역 미관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역민들은 개발이 되면 삶이나 주변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를 했겠지만 돌아온 건 애물단지로 전락한 흉물스러운 잔해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폭력과 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했던 개발 논리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연을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주의 하리공간이 빈집을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 되돌려주었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사례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빈집의 새로운 쓰임새를 낯설게나마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늦지 않게,
장장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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