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배에게 빌린 돈 1만 3천 달러를 갚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사내가 말썽을 일으킨 65년 형 머스탱을 국도변 정비소에 맡기고는 목이나 축일 겸 마을로 들어간다. 외딴 소읍이란 것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없다는 듯이 외지인을 경계하거나 조롱하거나 위협하거나, 그런데 주민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커튼 봉 설치를 도와달라며 유혹하는 유부녀와 아내를 죽여 보험금을 타겠다며 살인을 청부하는 남편과 맥주 한 잔에 진하고 노골적 추파를 던지는 바걸과 여자 친구에 대한 집착으로 시비 거는 동네양아치와 이 모든 걸 통제하며 즐기는 보안관까지. 영화 ‘유-턴’(U-Turn)이다.
문제는 마켓에 침입한 강도를 쏜 주인의 총질에 사내가 가진 돈 전부가 날아갔다는 것. 게다가 악덕 정비업자는 150달러를 내야 차를 내준다고 으름장이고 마을을 떠나려고 힘들게 구한 버스표는 동네양아치 손에서 찢겨졌다. 상환날짜를 어겨 이미 손가락 두 개가 잘렸는데 돈도 날리고 발도 묶여버린 셈. 이쯤 되면 되는 일이 하나 없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들만 널렸다고 원망하겠지만, 차분하게 복기해보면 모두가 사내의 업보다. 그때 음료만 사서 마켓을 나왔더라면 150달러에 차를 찾아 마을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사내는 욕망을 절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다. 전화로 애걸해도 150달러를 선뜻 보내주는 이 하나 없을 정도로 과거의 삶이 형편없다. 전 애인과 여자 친구의 물건을 훔치고 커다란 손해를 입히거나 못할 짓을 일삼았으며 심지어 엄마는 죽은 자식으로 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릴 정도. 출구도 퇴로도 막힌 사내는 부동산업자의 아내 살인청부를 수락하지만 다시 욕정에 사로잡혀 제거 대상과 섹스를 벌인 후 남편 살인과 도주를 선택한다(요즘 세상에서 보면 이 정도는 막장도 아니지만).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나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감독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봐라, 과거에 행한 못된 행실이 너를 개미지옥에 처박아놓았잖니?
영화가 채택한 과거는 한 사람을 설명하는 배경으로 자리하면서 장르 전체를 움직이지만 현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현실에서 과거란 학력 경력 이력 병력 전력 전과 등의 각기 다른 이름으로 개인의 역사를 대신한다. 살다보면 종종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기 일쑤인 건 이 때문이다.
요컨대 과거는 한 사람이 걸어온 역사이고 그의 인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이다. 그러니 사회지도층이라면 더 높고 엄격한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해야 마땅할 터.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과거를 묻어두자는 건 평범한 시민에게나 적용할 기준이라는 얘기다. 성공의 이력은 기를 쓰고 앞세우면서 추악한 과거만 등장하면 억울한 척 본질을 왜곡하는 자들이 활개를 치는 나라는 얼마나 불행한가.
어릴 적에 배운 착한 사람의 기준은 단순하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중도덕 잘 지키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영화 속 좀도둑에 불과한 사내는 고작 150달러가 없어서 지옥도 갇혔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모름지기 착하게 살 일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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