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프로 스포츠 구단과 ‘색깔’로 인한 마찰을 빚으며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잊을만 하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울산시는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3층 좌석 일부를 교체하면서 기존의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해당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이용하는 기업구단 울산 HD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라는 점. 홈 구장을 구단의 색이 아닌 다른 빛깔로 물들이는 셈이다. 더군다나 빨간색은 울산의 라이벌 구단인 포항 스틸러스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는 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 2009년 홈페이지 ‘클래식 풋볼(Classic Football)-라이벌’ 코너를 통해 소개할 정도로 울산과 포항의 라이벌의식은 국내·외 축구계에서 유명하고, 치열하다. 포항의 붉은색이 경기장을 물들이게 된다는 소식에 울산 팬들이 반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축구팬들은 울산시장과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K3리그 소속 울산시민축구단 사태를 목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 울산시민축구단 역시 상징색이 청색이다. 하지만 지난해 개막을 앞두고 돌연 붉은색 홈 유니폼을 발표했다. 두 사안이 모두 울산시장의 저의대로 행해졌다는 것. 울산의 축구팬들은 이에 맞서 ‘파란문수 지키기 비대위원회’를 꾸리는 동시에 ‘우리의 문수는 파란색’, ‘울산 HD는 단 한 번도 붉은 적이 없었다’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서며 팀의 색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충청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K리그2의 도민구단 충남아산FC의 상징색은 파란색과 노란색. 충남아산FC의 홈 유니폼 색깔은 언제나 이 두 색상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충남아산의 선수들이 홈 개막전에서 입은 유니폼은 붉은색 써드(3rd) 유니폼. 특히, 상대 부천의 상징색과 홈 유니폼 색상이 빨간색이었다는 점에서 충남아산팬들을 시작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충남아산 서포터즈는 이를 두고 ‘당시 경기장을 찾은 충남도지사와 아산시장의 입김에 휘둘린 결과’라고 비난했다.
대구는 위 지역들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지역 프로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FC, 그리고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의 유니폼은 모두 푸른 계열 색을 유지하고 있다. 현 대구시장은 시민 구단 대구FC의 유니폼 색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붉은 계열로 바꾸고싶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 결과, 팬들이 구단주인 광역 단체장에게 야유를 보내지도 않고, 시장도 팬들에게 ‘고소가 가능하다’며 위협하는 촌극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구시장은 이번달 열릴 예정인 2025 대구마라톤 공식 티셔츠의 새빨간 디자인이 공개된 직후, 대회 참가 신청자들과 네티즌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뜬금없는 붉은색 셔츠 디자인이 시장의 입김이 닿은 결과라는 것. 프로구단의 상징색을 건드리는 우매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대회 참가자들이 새빨간 셔츠를 입고 달리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 대회의 권위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보다 격상될 것이라는 판단이었을까?
이같은 사례들은 스포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같은 사례들의 중심에 있는 선출직 단체장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당 소속이다. 그 당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파란색을 모두 빨간색으로 물들여야 속이 시원한 걸까. 아니면, 온 세상이 붉은 빛으로 물들면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주리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본인들의 당이 상징색으로 붉은색을 쓴 기간보다, 파란색을 사용했던 기간이 더 길었던 사실을 떠올린다면 실소를 금할 수 가 없다. 이들이 청바지 대신 붉은색 바지만 고집하고, 푸른 바다와 하늘도 꼴보기싫어 붉어질 때까지 고개를 돌리고 있는다면 그 일관성에 박수를 보낼 용의는 있다. 가치판단을 떠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