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영과 함께 떠나는 생태 환경문학 기행(18) 3월 남도에서 봄을 꿈꾸다

2025-03-26

다산과 다시 만나다

 어느 해이던가 한참 전에 홀로 다산초당을 찾았던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의 여운으로는 산길을 제법 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초당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짧았다. 이번에 찾은 초당은 여전했고 다산의 글씨가 새겨진 정석(丁石) 또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산이 걸었던 길을 걷습니다.

숨은 차오르고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오나 싶어

무거운 발걸음을 연신 옮깁니다

다산도 그랬을 겁니다

이 길이 마지막이겠구나

다시 이 길을 또 언제 밟을 수 있으려나

가슴 떨리며 길을 걷는 동안

꽃이 피고 나뭇잎이 짙어지고 낙엽이 내리고

한참 눈이 내렸겠습니다.

가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누군가 걸어갔던 길을 생각합니다.

지금 아니면 하는 마음으로 걸어야 할 때가 있지요

그리운 편지 같은 동백꽃 한 송이 떨어집니다

다산도 우리도 어쩌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그가 잠시 머물던 세상에 나도 잠깐 왔다 갑니다

<바람 한끝만큼의 향기가>

 강진 유배생활 동안 제자를 양성하고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집필했던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쉬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끝이 향하는 곳은 당시의 왕이었던 정조이다. 조선조 후반기의 부흥을 이끌었던 정조 무렵은 어쩌면 조선이 새로운 조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의 시기였다. 다산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학식과 패기를 겸비한 인재였다.

 그러나 다산은 천주교 박해의 시련 앞에서 정조의 울타리 밖으로 튕겨져 나왔고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가 남긴 책들은 그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마천에게 가해진 궁형이 『사기』의 동력이었던 것처럼 다산 역시 유배생활이 아니었더라면 『목민심서』를 비롯한 책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도 유배생활이 길어지면서 약해진 자신의 마음을 시로 달랬다고 하지 않던가. 다만 그나마 그가 교류했던 초의선사나 혜장스님과의 추억이 쓸쓸했던 유배지의 아픔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쉬이 끊어지지 않고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피지 않은 동백의 아쉬움

 백련사의 동백은 유명하다. 백련사는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동백나무가 1,500여 그루나 있는 대규모 동백 군락지이다. 그래서 봄소식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이 동백나무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백련사는 다산초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흔히 다산의 오솔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백련사까지 800m, 도보로 20분 남짓한 거리이다. 가는 길목에 몇몇 동백꽃이 떨어져 있기는 했으나 만개하기까지는 아직 때가 일렀다. 유난히 따뜻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이 땅의 나무도 사람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마을 초입에서 활짝 핀 매화와 산수유, 영춘화를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꽃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달랐다. 전국적으로 개화가 2주 정도 늦춰지는 바람에 이곳에서 흐드러진 동백을 볼까 기대했건만 일부만 꽃을 피웠을 뿐이었다. 다음에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초당에서 백련사 넘어가는 길이 끝나는 자락에는 차밭이 있었다. 아마도 절에서 관리하는 것이리라. 익히 알려진 것처럼 다산과 교류했던 초의선사는 해남 일지암에 머물면서 한국 다도의 일번지라는 명성과 함께 <동다송(東茶頌)>이라는 시를 남겼다. 우리의 차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성전과 같은 글이다. 이곳 강진에 차문화가 발달된 것이 그런 인연의 한자락인 듯하여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백운동 원림을 탐하다

 마지막 발걸음을 남도 3대 정원이라는 백운동 원림으로 향했다. 원림 지척에는 백련사가 있다. 가다 보니 월출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차밭이 장관이다. 다산은 원림을 찾았다가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12편의 시로 남겼다.

 초의선사는 당시 즐겨 찾던 백운동 원림의 그림을 남겼고 후에 원림이 황폐화되었을 때 이 그림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추억이 후대에는 다시 일으켜 세우는 토대가 되었으니 참으로 모를 게 사람의 인연이다.

 들어서니 과연 다산이 반할 만했다. 집밖 한켠을 넉넉하게 채운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들어선 정원에는 아직 매화가 덜 피어 있었다. 다만 이른 홍매 한 그루만이 낯선 우리를 반겨주었다. 봄에는 원림에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고, 여름이면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담로의 개인 정원이기는 하지만 담양의 소쇄원이나 보길도의 부용동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뒤편 정자에서는 이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너머로는 영암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었다. 딱 그림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산과 초의선사, 이담로가 함께 머물렀던 공간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그들이 차를 나누던 곁에서 매화나무는 다 들었을 텐데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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