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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중국 관영 매체 CCTV가 공개한 짤막한 동영상.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한 ‘민영기업 좌담회’ 영상이다. 짧은 시간 스쳐간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니 충격적이었다. 글로벌 전기자동차 1위 BYD의 왕촨푸 회장,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 CATL의 쩡위췬 회장, 최근 전 세계에 쇼크를 남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량원펑 최고경영자(CEO).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 내로라하는 중국 기업인들이 화면에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미국 빅테크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라인업이었다.
시 주석이 민영기업 좌담회를 주재한 것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그는 공산당 간부들을 대거 대동하고 연설을 했고 기라성 같은 기업인들은 경청하며 메모했다. 참석자들 중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마 창업자였다. 그는 5년 전 중국 정부의 금융 규제를 전당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가 사실상 쫓겨나 일본·태국 등을 떠돌았다. 그런 마 창업자를 시 주석이 주재한 좌담회에 초대한 것은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민간기업 지지를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보였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자체 기술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 첨단 기술 역량을 끌어올려왔다. 레드테크(Red Tech)로 불리는 중국의 기술 굴기는 역설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가 10년까지 길어지면서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딥시크(DeepSeek) 쇼크’가 대표적. 미국 오픈AI의 ‘챗GPT’ 개발비의 약 5%에 불과한 비용으로 이에 맞먹는 AI 모델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얕잡아 봤던 중국의 저력이 확인된 순간이다. 비록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견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해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중국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레드테크의 약진은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감지된다. 중국 기업들은 올 초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에 1339곳이 참여해 30%를 차지했다. 1509곳이 참여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기술들도 플라잉카와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등 최첨단이어서 감탄을 자아냈다. 역시 올 초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의 주인공은 단연 중국이었다. 심지어는 삼중항체 항암제를 미국 애브비에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5000억 원)에 기술이전했고 이노벤트는 항암제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을 10억 달러에 스위스 로슈에 수출했다.
중국의 제약·바이오 분야 경쟁력은 탄탄한 기초과학 역량 덕분이다. 영국이 최근 발표한 생명과학 경쟁력지수(LSCI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의 의학 논문 피인용 점유율은 24%로 미국(31.6%)에 이어 2위다. 2011년 6.2%에 불과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4배가량 급성장했다. 한국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3.1%로 10년 넘게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면서 10위에 머물렀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이 보고서에 대해 “향후 중국의 연구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 대목은 뼈 아프다.
중국의 영향력은 의약품의 기초인 원료의약품 시장에서도 막강하다. 지난해 국내에 등록된 원료의약품 545개 중 중국산은 152개로 28%를 차지했다. 저렴한 가격과 안정된 품질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등에도 상당한 원료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다 보니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물론 최근까지도 원료의약품이 부족해 각종 약들이 품절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의약 주권’조차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이를 바득바득 갈며 칼을 벼려왔다. 콧대 높은 중국 정부마저 정부 중심 기술 발전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민간기업들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과학자·기업인들 모두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지금이라도 기술 인재 확보, 연구개발(R&D) 지원, 규제 완화 등 장기 플랜을 세워 ‘K테크의 역습’을 준비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