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관련 취재를 하면서 실소를 참지 못한 순간이 많았다. 나라를 뒤흔든 사태 곳곳에 어이없는 요소가 결합돼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다.
그중 하나가 경기 안산 ‘롯데리아 회동’이었다. 계엄 이틀 전과 당일, 전·현직 국군정보사령관과 군인들이 이곳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등을 논의했다. 후배와 농담 삼아 이야기했다. “영화·드라마에선 보통 암투나 모략을 고급 일식집에서 논의하던데.” 온라인에서도 계란 네 개를 넣은 ‘네란 버거’나 ‘계엄 세트’ 같은 밈(meme)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들의 계엄 사전 모의 의혹에 골몰할수록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왜 롯데리아였을지를 두고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폐쇄적인 곳보다 개방되고 적당한 소음도 있는 장소가 좋았을 거란 해석이 많다.
2013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사건’ 때도 지하 혁명조직으로 지목된 ‘RO’가 접선한 장소 중 하나가 롯데리아였다. 이듬해 1월 수원지법은 재판에서 국가정보원이 제출한 녹취 파일을 틀었지만 잡음이 많아 대화 내용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노 전 사령관 등도 모의에 적합한 장소를 미리 물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롯데리아의 위치도 주목할 만하다. 노씨가 거주한다는 빌라에서 도보로 약 20분 정도(약 1.4㎞) 거리였다. 현역인 문상호 정보사령관(소장)과 대령 등 수뇌부가 이곳에 소집한 것이다. 이들이 소속된 정보사령부는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경기 안양시에 있다. 민간인인 노씨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 가늠하게 한다.
이번 사태가 코미디처럼 느껴진 또 다른 순간은 ‘아기 보살’이 등장했을 때다. 노 전 사령관이 한 무속인과 동업하며 활동했던 점집 이름이다. 이어 그가 사주를 봐줬다거나 그에게 점을 봐줬다는 이들이 등장했다. 또 노 전 사령관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 계엄 날짜를 제안했다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운세를 언급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수사 기관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현재까지 노씨의 역술 활동과 계엄 사이엔 유의미한 관련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수첩이 점집 압수수색 당시 발견됐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요소 뒤에 놓쳐선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국가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는지, 군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 등. 한편으론 ‘이번 사태 면면이 얼마나 믿기 어려울 만큼 황당한가’란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