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수능달만 되면 ‘쑥’…10대 우울증 5년째 증가

2024-10-21

“흔히 10월 모의고사를 ‘자살 방지’ 모의고사라고 불러요. 너무 어려워서 등급이 낮게 나오면 학생들이 수능 직전에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질 수 있으니까 일부러 난이도를 쉽게 조정한다는 뜻이에요.”

삼수 끝에 대학 입시에 성공한 변 모(21)씨는 수험 생활 내내 정신 건강과 관련된 자학적 표현을 들어왔다. 변씨는 “친구들끼리 ‘시험 못 보면 자살각’ ‘오늘 한강 물 몇도냐’ ‘정병(정신병) 걸릴 것 같다’는 말을 습관처럼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10대 우울증·불안장애 환자가 최근 5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월별 환자 수를 살펴보니 매년 11월마다 최대 환자 수를 기록해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의 정신적 압박이 극도로 치닫고 있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대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는 2019년 5만 7979명(월별 중복 환자수 제외)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해 9만 662명을 기록했다. 5년 전과 비교해 약 56.4% 뛴 셈이다.

특히 매년 수능 시험이 치러지는 11월에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1월 10대 환자 수는 2만 2093명으로 연평균(1만 7887명)보다 약 23% 많았고, 지난해 11월 환자 수 역시 3만 6078명으로 연평균(3만 572명)보다 18% 이상 많았다. 수능 직전·직후인 10월과 12월 역시 매년 번갈아가며 환자 수 2·3위를 기록했다.

집계 대상을 전체 연령대로 넓혔을 때도 11월에 환자 수가 가장 많았지만 평균보다 고작 2% 높은 수준임을 고려하면 10대 집단에서만 유독 급격한 증가 폭이 나타나는 모양새다. 30~40대 등 수능과 무관한 연령대의 경우 11월이 아닌 다른 시기에 최다 환자 수를 기록했다.

결국 시험 한 번에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치열한 입시환경이 10대의 정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해석이 나온다. 변씨 역시 “수능이 다가올 수록 예민해지고 다투거나 하루 종일 우울해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면서 “성적 스트레스로 잠을 자지 못해 수면제를 처방 받아 먹거나 자해를 한 친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10대 이하의 우울증 관련 약 처방량이 급격히 늘어난 추세도 포착된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연령대별 마약류 및 향정신성의약품 처방 현황’에 따르면 10대 이하의 1인당 처방량은 2014년 46.5개에서 2023년 98.3개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약사 A(28)씨는 “대치동 등 유명 학군에서는 수험생들이 불안, 두근거림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정신과 약을 오프라벨로(허가받은 질환 이외 용도로) 처방 받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매년 수능철마다 수험생이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등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신 건강 관련 대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역시 정신건강관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국민 마음건강 투자·상담' 프로그램 등 예방 정책을 도입하고 관련 예산도 늘리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 우울증은 성인과 다른 성향을 보이는 만큼 더욱 발견하기 어렵다면서 근본적으로 치열한 입시경쟁 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후림 정신과 전문의는 “청소년들은 본인의 우울증을 알아채지 못하고 분노나 짜증으로 표출하는 데 그치는 경향이 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10대가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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