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상처 난 거리

2025-01-24

반 고흐가 노란 집에 머무르며 강렬한 태양 빛에 이끌렸던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은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1970년부터 뜨거운 여름마다 국제적인 사진 축제가 열린다. 프랑스어로 ‘사진과의 만남’을 뜻하는 이 축제는 이미 50주년을 훌쩍 넘기며 여전히 세계 최초이자 최장수 사진 축제로서의 이력을 갱신 중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상업사진가로 유명한 김중만이 이미 청년 시절 이 축제에서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니스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중 사진에 매료된 그는 친구들을 모델로 특유의 과감하고 역동적인 인물 사진을 찍어 1977년 아를에서 ‘젊은 작가상’에 꼽혔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스물세 살이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시선을 빼앗긴 건 나무였다. 그것도 수려하거나 웅장한 자태가 아닌 가로수를. 자신의 스튜디오까지 가는 길에 늘어선 나무들은 세파에 시달려 상처를 입거나 거친 가지치기를 통해 수형이 망가진 채로 서 있었다. 나무의 형상을 온전히 담기에 쉽지 않을 만큼 거리의 폭도 좁았다. 김중만은 9년에 걸쳐 이 나무들을 찍었다. 처음 4년은 묵묵히 대화하듯 풍경의 변화를 지켜보기만 했고, 결심이 선 뒤로는 수천 장을 찍었다. 그것도 인물 사진을 찍듯 아주 공을 들여서. 그리고는 다시 대형 한지에 공을 들여 인화했다. 2년 전에 생을 마치지 않았다면 아직도 찍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중만은 그렇게 아를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선보인 관능적인 사진으로 시작해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나무로 쉼표였으면 좋았을 마침표를 찍었다.

〈상처 난 거리〉라 이름 붙인 연작 중, 눈이 곱게 내려앉은 나무에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요’라는 작품명을 붙였다. 고요한 사진에 반한 쓸쓸한 연작 제목은 화려한 작가로서의 활동과 달리 신산했던 그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격동적인 정치 상황으로 인해 이유를 알 수 없는 국외추방까지를 겪어야만 했던 그가 남긴 마지막 연작은 유난히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올겨울을 조용히 위로한다. 이 연작 중에는 같은 나무 위에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사진도 있다. 아름답게, 마침내.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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