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겨울은 과연 봄이 오기는 할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너무 혹독했다. 그러나 봄이 오긴 왔나보다. 겨울을 이겨내고 마른 가지마다 연한 녹색의 새순이 돋아나고 벚꽃 꽃망울이 터지려고 한다. 벤치에 앉아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와서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이게 바로 봄이구나 싶다. 한 아이와 엄마가 시소를 타고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리듬감이 보는 나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시소타는 모습을 한참 보고있자니 아,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헌법처럼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시소타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의 의무는 앞에 앉은 이를 높여주는 것이고, 나의 권리는 앞에 앉은 이로 인하여 내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시소를 재미있게 타려면 대충하지 말고 내 몸무게를 실어 내 있는 힘을 다해서 상대방을 높여줘야 한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은 남을 높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칭찬할 일이 있을 때에도 그다지 상대방을 높여주지 못한다. 상대방을 높여주었을 때에 나 또한 내 앞의 상대로 인해 높아질 수 있는 것인데.
높이 올랐을 때의 환희, 상쾌함, 짜릿함은 누구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누구나 거기서 머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면 시소타기는 불가능해진다. 높이 올라서도 우리는 욕심의 키를 낮추고 서슴없이 낮아질 줄 아는 나의 여유가 상대방에게 넓은 웃음을 주고 서로의 근심의 무게를 가뿐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삶이 있다. 근심의 무게가 다르고 가진 것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몸무게가 가벼운 아이를 위하여 엄마는 아이 쪽으로 더 가까이 가서 앉아서 몸무게를 맞추고 시소를 타고 있는 모습에서 세상의 약자와 강자가 함께 어울려 재미있게 사는 비결을 발견했다. 바로 강자가 약자 쪽으로, 그러니까 무게중심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 한탄스러웠다. 언제나 강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굳건히 앉아있고 약자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려고 하니 이 사회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삐그덕거린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시소타기와 같이 밸런스가 중요하다. 상대방이 없으면 나 혼자서 시소를 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너무 어렵다. 내 앞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서 힘과 위치를 조절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다.
한참 재미있게 놀던 아이와 엄마가 시소에서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언젠가 우리의 인생 시소에서 내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힘만 과시하면서 요지부동이었던 이의 인생은 과연 즐겁고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높아지기 참 어려운 세상을, 혼자서는 낮아져도 기쁘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마주앉은 시작부터 삶의 마지막 자리까지 이렇게 높이며 낮아지며 쿵쿵 쿵덕쿵 기쁨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봄, 그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대한민국, 지금까지 상대를 높이지 못해 언제나 부조화만 보였던 이들도 시소 한번 타보고 인생을 그렇게 재미있고 가치있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