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은 형식을 따른다(FFF: Function Follows Form)’원리는 형식(form)을 자유롭게 탐구하거나 변형할 때, 초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능(function)이 발견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기능은 목표나 목적을 의미하고, 형식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설계 방식을 나타낸다.
전통적인 기업의 문제해결 접근은 원가 절감과 같은 목표(기능)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형식)을 모색하는 구조를 따른다. 그러나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기능이나 목적에만 초점이 제한되어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는 지금까지 문제없었다는 이유로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FFF는 이와 반대로, 기능(목적)보다는 형식을 먼저 탐구하고 변형하는 접근법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 씽킹과 같은 창의적 문제해결기법을 적용하여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를 변형하면, 혁신적인 결과물이 탄생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즉,‘탁월한 제품이나 서비스 아이디어’라는 기능은 형식의 자유로운 변형을 통해 역(逆)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형식이 기능보다 앞서는 이유는 쉽게 증명된다. 예를 들어, 123x456이라는 계산(기능)은 곱셈이라는 연산 방법(형식)을 적용함으로써 56,088을 간단히 얻을 수 있다. 반면, 이를 거꾸로 접근하여 56,088의 도출을 목표로 방법(예:123x456)을 찾으려면,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에서 조건을 충족하는 인수분해를 찾아야 하므로 훨씬 복잡해진다. 신제품 개발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특히, AI 도구를 활용한 창의적 문제해결 방식은 적절한 형식의 변형을 유도하며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FFF의 사례로 1979년 출시된 소니의 워크맨을 살펴보자. 이 제품은 당시 “걸어다니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워크맨의 탄생은 1977년에 제작된 프레스맨(Pressman)에서 출발한다. 프레스맨은 크기가 크고 단일 스피커(monophonic)를 사용해 음악 감상에는 부적합했으나, 취재, 회의 녹취, 어학 학습용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외장 스피커와 견고한 구조 덕분에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녹음 기능을 기반으로 한 고음질의 소형 음악 기기의 개발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개발자 이라 미츠로는 크기를 줄이겠다는 기능적 목표보다는 음악 감상에 초점을 맞춰 기존의 카세트 플레이어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기는 녹음 기능이 빠진 생소한 제품이었지만, 미츠로는 이를 개인 실험실에서 음악 감상용으로 종종 사용했다. 이를 발견한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는 이어폰과 결합된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의 시장 가능성을 직감했고, 곧 제품 출시를 결정했다. 그 결과, 워크맨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례는 명확한 목표 설정 없이도 기존 제품의 자유로운 변형을 통해 초기 의도 이상의 혁신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FFF의 두 번째 사례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포스트잇이다. 1968년,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접착제 개발 과정에서 우연히 붙였다 뗄 수 있는 독특한 접착제를 만들어냈다. 당시 개발팀은 이를 불량품에 가깝게 인식했으며, 시장 반응 조사에서도 ‘무난하다’는 정도의 평가에 그쳤다. 그러나 6년 후인 1974년, 한 임원회의에서 이 접착제의 잠재력이 재발견(Rediscovery)되었고, 대규모의 무료 판촉 활동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포스트잇은 1984년까지 3M을 대표하는 혁신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포스트잇 사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의 혁신 문화라는‘폼(form)’이 초기 의도(기능)와 무관하게 더 큰 혁신적 제품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제품의 물리적 변형뿐 아니라, 혁신 지향의 조직 문화와 같은 형식적 요소가 우연한 발견조차 성공적 혁신(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평생학습의 시대에 FFF 훈련을 통해 누구나 지역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창의적 문제해결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송해근 <전주대학교 미래융합대학 미네르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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