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내연기관 역사 마지막 장 장식
에미라 퍼스트 에디션, 풀옵션 사양 제공
오롯이 달리기에 집중한 초경량 스포츠카
2.0 터보 DCT, 메르세데스-AMG 엔진 탑재
최고 출력 364마력, 최대 토크 43.9kg.m
차체 4.4m, 공차중량 1400kg, 제로백 4.4초
터보차저와 유압식 스티어링 휠 조화
탄탄한 주행+차체 밸런스, 고속·와인딩 강점
영국 자동차 제조사인 로터스는 경량 스포츠카를 주력으로 한다. 이번에 시승한 로터스 에미라는 엘리스, 엑시지, 에보라 등 기존 로터스의 경량 미드십 스포츠카의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뻑뻑한 스티어링 휠, 노면 상태를 그대로 전달하는 단단한 서스펜션, 좁은 수납공간 등으로 일상의 편안함 따위는 무시된다. 그 대신 속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차체는, 달리는 재미가 진정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매력을 담았다.
로터스는 2022년 경량 미드십 스포츠카 에미라를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9월. 3.5ℓ 슈퍼차저 엔진을 탑재한 6단 자동/수동변속기 모델과 2.0ℓ 터보 엔진을 장착한 DCT 모델 등 세 가지다.
에미라가 특별한 점은 브랜드 최후의 내연기관 스포츠카라는 데 있다. 로터스는 중국 지리가 새 주인이 된 뒤 시대 흐름에 발맞춰 순수 전기 하이퍼카를 개발하고 있다. 에미라 역시 브랜드의 전기 하이퍼카 에미야의 디자인 특징을 계승해 더욱 날렵하고 스타일리시한 차세대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시승 차량은 에미라 2.0 DCT다. 외관은 여느 슈퍼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도어 미드십 스포츠카 고유의 역동적인 실루엣이 강한 인상을 준다. 보닛과 범퍼에 적용된 에어 인테이크는 공력 성능에 영향을 준다. 측면부에 길게 자리 잡은 라인은 공기역학적 설계로 만들어졌다. 듀얼배기구와 엔진룸이 보이는 후면은 스포츠카다운 탄탄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꽤나 심플한 디자인임에도 확실한 에어로다이내믹 성능을 만들어낸다.
에미라의 길이는 4.4m가 조금 넘고 폭은 1.9m 수준으로, 콤팩트하다. 높이는 1.2m 수준에 불과하다. 공차중량은 1446kg이다. 기술 파트너인 메르세데스-AMG의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가 조화를 이룬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4초다.
고급스러운 스포츠 시트는 예상보다 편안하면서도 몸을 잘 잡아준다. 시트에 앉으면 밖에서 보는 것보다 시야가 높다. 차체가 낮아서 도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고,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을 열어보니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땅에 손이 닿을 정도로 낮게 깔려있어 의아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실내는 곳곳에 가죽과 알칸타라를 사용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패들 시프트가 포함된 D-컷 스티어링 휠,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 10.25인치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 알칸타라 혹은 나파 가죽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12-WAY 전동 시트, 알칸타라 헤드라이너, 영국 KEF와 협업해 개발한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등을 적용해 편의성을 높였다.
레버나 버튼도 간결하면서 조작감이 좋다. 전자식 기어 레버는 두 번씩 당겨야 변속이 된다. P 상태에서 D로 바꾸기 위해서는 아래로 두 번 당기고, R로 바꾸기 위해서는 위로 두 번 올리는 식이다.
시트 사이에 마련된 두 개의 컵홀더와 함께 도어 트림엔 500㎖ 크기의 음료수병을 담을 수 있는 홀더가 있다. 지갑이나 문서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콘솔 네트와 글러브 박스, 암레스트가 마련됐다. 부피가 큰 짐은 시트 뒤쪽 공간(208ℓ)이나 엔진 뒤쪽의 트렁크(151ℓ) 공간에 적재할 수 있지만, 일반 차량과 같이 넓은 공간을 기대하면 안 된다.
시동 버튼은 기어 레버 밑에 자리하고 있다. 붉은색 커버를 들어 올리고 버튼을 누르면 시트 뒤에서 우렁찬 엔진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온몸에 진동이 전해진다. 방음 상태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엔진음과 흡배기음을 즐기기 위한 선택이라면 용납할 수준이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다. 차가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지만, 정지 상태에서 바퀴를 돌리기 위해서는 꽤 힘을 줘야 한다. 가속페달은 세밀한 컨트롤을 위해 일반 차량보다 더욱 깊게 밟도록 세팅됐다. 브레이크 페달은 응답성이 뛰어나다. 시내에서는 부드럽게 서야 할 때도, 급정거를 해야 할 때도 안정적으로 확실히 반응한다.
도로를 달리자 에미라가 스포츠카라는 느낌이 확실히 전달된다. 승차감은 탄탄하다 못해 시트와 맞닿은 몸에 노면 상태를 그대로 전달한다. 스티어링 휠은 넓은 폭의 타이어 덕에 노면의 굴곡에 따라 움직여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귀를 때리는 우렁찬 엔진음은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고속도로에서 에미라의 진가가 드러난다.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터보차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차를 밀어붙인다. 노면이 좋지 않은 도로에서는 스티어링휠이 요동을 친다.
와인딩 코스에서의 성능은 운전자와 소통하며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것 외에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게 배분 등으로 잡은 이상적인 차체 밸런스는 극한 상황에서도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인다. 다소 딱딱하다 느꼈던 서스펜션도 순수한 달리기를 위한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미라는 사실 민첩한 변속 성능이나 폭발적인 가속력을 보여주는 차량은 아니다. 수납공간도 부족하고, 휴대전화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다. 무선 충전조차 지원하지 않는다. 최근 출시된 차량답지 않게 올드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다만, 운전자만의 스타일대로 차량을 다루고, 함께 호흡하며 달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차량이다.
에미라 2.0 DCT 모델의 몸값은 1억4500만원부터 시작된다. 이 가격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포츠카는 다양하지만, 에미라만의 장점은 당연 독보적이다. 전자제어에 익숙해진 요즘,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날것'의 드라이빙을 하고 싶다면 이만한 차량을 찾긴 힘들어 보인다.
시승 후에도 손과 발에 남은 에미라의 주행감은 단순히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로터스 내연기관 역사가 마지막 장을 기록하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