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 버밍엄 빌라 파크 주변이 아스톤 빌라와 이스라엘 마카비 텔아비브 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경기일에 거센 정치적 시위로 뒤덮였다. 경기 당일인 7일 경기장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지지 세력과 이스라엘 지지 세력이 동시에 집결하면서 경찰 700여 명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공질서 작전이 벌어졌다.
웨스트미들랜즈 경찰은 이날 유럽리그 경기 치안을 위해 전국 10개 관할 경찰로부터 인력을 지원받아 경비 병력 약 700명을 배치했다. 톰 조이스 치안감은 “축구 경기와 시위를 관리하는 일은 흔하지만, 이번 경기만큼 높은 관심과 우려가 집중된 적은 드물다”며 “여러 단체가 동시에 맞불 시위를 준비해 대규모 병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날 체포된 6명 중에는 인종적 모욕 발언으로 인한 공공질서 위반 혐의자 3명, 마스크 착용 명령 불복 1명(21세 남성), 해산 명령 불복 1명(17세 소년), 그리고 평화 위반 행위 1명이 포함됐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는 경기장 주변 도로와 광장에 모여 가자지구 폭력 사태 종식을 촉구하며 깃발과 현수막을 흔들었다. 이에 맞서 친이스라엘 단체는 ‘반유대주의에 맞서자’는 전광판 차량 다섯 대를 동원해 경기장 인근을 돌며 시위를 벌였다. 전광판에는 ‘팬 말고 증오를 금지하라(Ban hatred not fans’라는 문구와 함께 티에리 앙리가 한 말, “축구는 골보다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라는 인용구가 함께 실렸다.
경찰은 두 진영을 분리하기 위해 인근 도로를 통제하고, 자정부터 익일 새벽 3시까지 도심 전역에 ‘Section 60’ 임시 수색 권한을 발동했다. 이 권한은 경찰이 신원 불문하고 시민을 임의 수색할 수 있게 하는 조치로, 대규모 폭력 사태가 우려될 때 발동된다.

아스톤 빌라는 앞서 지난달, 마카비 텔아비브 팬의 입장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버밍엄시 안전자문위원회와 웨스트미들랜즈 경찰의 첩보 분석 결과를 토대로 내려졌다. 경찰은 “마카비 일부 극단 팬들이 과거 폭력 사건 및 인종차별적 구호에 연루돼 있으며, 이번 경기에서도 폭력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조치는 영국 의회에서도 논란이 됐으며, 일부 의원들은 “경찰이 축구 팬을 정치적 위험 요소로 취급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크레이그 길포드 웨스트미들랜즈 경찰청장은 “공공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기장을 찾은 현지 팬들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빌라 팬 애덤 셀웨이(48)는 홈팀과 마카비 색이 반반 섞인 머플러를 착용하고 “정치가 아니라 축구를 보기 위해 왔다”며 “원정 팬을 막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빌라 팬 엘리엇 루드비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와 함께 경기장에 가지만 폭력 사태가 우려돼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 속에서 단지 축구 한 경기를 위해 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회의가 든다”고도 덧붙였다. 지역 팬 그룹 ‘펀자비 빌런스’는 SNS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자. 모두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며 평정을 호소했다. 마카비 텔아비브의 잭 안젤리데스 대표는 경기 전날 “우리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며 “정치가 결코 축구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위를 주도한 팔레스타인연대캠페인 측은 “이스라엘 구단의 방문 자체가 분노를 일으켰다”며 “경기 취소 요구가 무시된 만큼 평화적 항의는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 외에도 ‘전쟁중단연대’, ‘영국무슬림협회’, ‘알악사 친구회’, ‘팔레스타인포럼 인 브리튼’ 등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시위를 조직했다. 버밍엄 페리바 지역구의 아유브 칸 무소속 의원은 현장에 직접 나와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인간애의 표현”이라며 “우리는 축구선수들을 환영하지만 폭력과 제노사이드는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유엔 조사위원회는 지난 9월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5개 집단학살 행위 중 4개를 실제로 수행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사실 왜곡과 허위에 기반한 보고서”라며 강력히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