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국책은행의 역할과 기능에도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저성장 기조에 따른 새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 방침과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 맞물려 대규모 기능 재편이 예상되면서다. 임기 만료를 앞둔 국책은행 차기 수장 인선에 따라 새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성도 가늠할 수 있을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남권산업투자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대선 직전인 지난 1일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대신해 공약한 동남투자은행(가칭)의 구체화 방안이 담겼다.
동남투자은행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기존 국책은행을 비롯해 국가와 부산·울산·경남 지방정부가 출자해 설립 자본금을 대는 구조다. 동남투자은행에서는 동남권 지역 기업을 위한 산업혁신기금을 조성해 조선·자동차 등 주력 분야를 지원한다.
동남투자은행 뿐만 아니라 충청·서남 등 각 지역 단위의 국책은행이 설립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앞서 같은 당 장철민 의원도 충청권산업투자공사 설립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동남투자은행과 마찬가지로 충청·세종권의 혁신을 위한 별도 기금을 설립하되, 공사의 감독 권한은 산업통상자원부에 맡는 방안이다.
국책은행 기능 재편은 정부 조직 개편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역할을 통합·축소하는 과정에서 신설되는 동남투자은행은 물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기존 국책은행의 감독 권한을 산업부나 중소벤처기업부 등 실물 부처로 넘기는 방안도 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된다.
실제 산업은행에 올해 신설된 첨단전략산업기금, 지난해부터 수출입은행이 관리 중인 공급망안정화기금 등은 산업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기업은행 역시 관련 법·제도상 중소기업 여신을 60% 이상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물 부처와 연계성이 크다. 이미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기술보증기금을 중기부로 이관한 것과 같은 정책금융기관 재편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책은행 기능 재편은 차기 수장 인선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관측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오는 6일을 끝으로 임기를 마무리한다. 윤희성 수은행장도 다음달이면 임기를 마친다.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내년 1월까지가 임기다.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정치권에서 정책금융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첨단산업 육성 등 주된 기능은 유지하되, 각 지역 단위의 지역 밀착형 투자은행을 설립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라면서 “국책은행을 비롯해 정부조직 재편에 따른 정책금융기관의 재조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