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뱀의 해’를 여는 설날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와 친척, 형제자매들과 함께 맛있는 명절 음식을 나눠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덕담이다.
그러나 덕담이 모두에게 달가운 것은 아니다. 결혼‘해야지’, 출산‘해야지’, 좋은 학교 입학‘해야지’, 취업‘해야지’, 다시 결혼‘해야지’로 무한 반복되는 이른바 ‘해야지’ 덕담에 귀향을 포기하는 이들마저 생기고 있다. 덕담을 가장한 참견에 맞서는 날카로운 대처법을 공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건네는 이들은 ‘진심 어린 조언’이라 하지만 듣는 이들에겐 ‘영혼 없는 잔소리’로 둔갑해버리는 덕담의 딜레마, 이 간극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설 명절을 앞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덕담의 기술’이다.
그래도 한마디 건넨다면 이렇게
덕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언제 결혼하니?’
금융플랫폼 카카오페이가 선보인 ‘잔소리 티셔츠’에 따르면 무려 30만원짜리 덕담이다. 설 명절을 맞아 이벤트로 출시된 해당 티셔츠는 잔소리 항목과 함께 그려진 큐알코드를 촬영하면 ‘즉시 결제’가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명절 스트레스를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티셔츠를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올해도 변함없이 이와 같은 덕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일 것이다.
덕담의 사전적 정의는 ‘새해를 맞아 주로 한 해 동안의 일들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아 어른·친구·아랫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임금이 신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좋은 말을 하는 궁중 하례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때때로 덕담은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했다. 외환위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2001년 새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던 한 카드사의 광고는 전 국민을 응원하는 ‘희망의 덕담’이었다. 지속되는 취업난이 이어질 땐 청년들을 위로하는 덕담이, 팬데믹 시기엔 건강을 염원하는 덕담이 주를 이루었다. 단순한 격려의 말을 넘어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언어적 도구로 기능한 셈이다.
이토록 선한 의도로 모두에게 온정을 전하던 덕담이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악담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칭찬에 서툰 사회 분위기와 천편일률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탓이다. 조현희 사회학자는 “현대사회는 단조롭지 않다. 삶은 점점 더 다양화되고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개개인의 상황과 마음을 읽지 못하고 의무감으로 ‘복붙(복사+붙이기)’되는 덕담이 공해로 느껴지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잘되길 기원하는’ 본래의 의미와 따뜻함을 잊고 의례적인 언어로 변질된 덕담은 경기 불황과 맞물리며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라는 오명도 얻었다. 지나치게 성공과 경제적 번영만을 강조하는 덕담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보였고, 진심이 동반되지 않은 말은 결국 힘을 잃었다.
누구를 위한 덕담인가
관심에서 벗어난 덕담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흘렀고 의도와 다르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불청객이 됐다. 특히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덕담의 투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이 된다. 최선희 가족 심리상담사는 “다수의 가족과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긴장감을 주는 시간인 명절에는 별 뜻 없이 한 말과 행동도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특히 1년에 고작 두세 번 만나는 친척들은 남보다 못한 사이이니 서툰 말로 상처를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공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세련된 표현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덕담은 없을까. 이를 위해서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은 ‘누구를 위한 덕담인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덕담을 꺼내기 전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던진 질문들이 ‘나’의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부는 잘하고 있니? 반에서 몇 등이니?”가 대표적이다.
화법도 달라져야 한다. MZ세대를 열광시킨 윤여정의 화법은 직설적이지만 권위적이지 않다. 상대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조혜영 관계심리 전문가는 “간혹 상대의 상황을 묻지 말라는 조언에 ‘라떼는’을 끄집어내는 분들이 있는데 사적인 것은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일상생활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충고한다.
가족이라도 싫은 건 싫습니다
언어학자 신지영 교수는 저서 <언어감수성 수업>에서 ‘명절에나 겨우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덕담을 두고 “놀라운 것은 그런 말이 듣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람이 막상 그 나이가 되어서는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유쾌하지 않던 질문의 레퍼토리를 소중한 유산처럼 배우고 익혀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려는 듯 말이다”라고 묘사했다.
반복되는 덕담 딜레마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족이다. 가족 간의 덕담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깝다는 이유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무심코 내뱉은 말이 비수처럼 꽂히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주제 선정부터 주의해야 한다. 견해가 달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보다는 여행이나 음식, 가족들이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며 친목을 다져봐도 좋겠다. ‘작년에 이랬지만, 올해는 반드시’와 같이 다소 부정적이거나 상대가 잊고 싶은 일을 들추는 행동은 주의하도록 한다. 어린이들에게 ‘노래 불러봐라’ ‘춤 춰봐라’ 같은 재롱잔치 요청도 금물이다.
덕담의 뼈대는 공감과 위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덕담도 풍성해진다. 김현정 언어교육전문가 역시 “현대인들은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하기에 남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돈을 허비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같은 이야기 반복을 지양하라”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친근한 어조를 유지하되 가볍고 긍정적인 표현으로 에너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덕담의 기술은 젊은 세대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대화하도록 한다. 덕담은 죄가 없다.
아, 무말 대잔치를 제안합니다
카피라이터 출신 김하나 작가의 저서 <힘 빼기의 기술>에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움 없이 지내온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 사람이 털어놓은 금슬 비결은 다음과 같다. “충고를 안 해야 해.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해.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해.”
김범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생각도 이와 같다. 그는 “‘쓸데없음’, ‘영혼 없음’ 그리고 ‘괜한’이 포함된 말들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할 말을 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덕담”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아무 말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감정 쓰레기만 생산하는 ‘아무 말 대잔치’보다 ‘무(無)말 대잔치’를 펼쳐보라”고 충고했다. 딩크족(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한 부부) 자녀 부부에게는 (아무 말 없이) 반찬 하나라도 더 밀어주기, 차례상을 준비하는 며느리를 (아무 말 없이) 도와주기 등이 그가 제안하는 방법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완벽한 덕담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본질보다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기고 중요한 순간이나 특별한 행사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말을 고심하는 이들도 늘었다. 지난해 둘째 아들의 결혼식을 치른 김영수씨는 “양가 부모에게 덕담을 요청한 아이들의 부탁에 ‘대필 서비스’를 알아보기도 했다”며 “너무 거창하게 들리거나 부족하게 들릴까 봐 신경이 쓰이더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가길 원한다면 덕담의 내용을 ‘설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강은하 새봄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인사를 건넬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 있었던 일을 예로 들거나 축하나 감사, 안부 등을 물으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복을 들을 사람에게 맞춰 각각 다른 버전으로 구체화해보라”고 조언한다.
덕담은 어렵지 않다. 그저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선조들은 “과거에 급제했다지”와 “올해는 장가를 들었다지”처럼 소망하는 바를 완료형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정사실로 하는 화법이 듣기에 더 좋을 뿐 아니라 주술적인 차원에서 실제로 그 일을 이룰 가능성도 높여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설엔 모두의 평화를 위해 ‘행복해졌다지’라고 덕담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